우리를 통해 흐르는 에너지를 인식하는 일.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린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모습으로
우리 내면에서 매 순간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죠.
때론 그 에너지의 문제로 인하여
삶의 길이 막히고 운이 끊어지는 날도 찾아옵니다.
또 어떤 날에는 알 수 없는 환희와 기쁨의 순간을
아무 이유 없이 맞이할 때도 있습니다.
우린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통제하고자 하지만,
어찌 삶이 그렇게 흘러갈까요.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로 판단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의 인식 너머에 수많은 얽혀있음을 통해 벌어지는
삶의 순간을 결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에 관한 것뿐이죠.
나를 통하여 흐르는 에너지를 막음은 바로 이기심에서 나옵니다.
스스로 나의 우주를 열린 계가 아닌 닫힌계로 조정하고,
그 안에서 시야를 좁히고 안테나를 꺾어버리니
온 우주에 펼쳐진 창조주의 사랑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격입니다.
나를 믿고 나를 의지하며 끌어당기라고 하죠.
하지만 그 배경을 가만히 바라보면,
그 모든 것들을 풍요의 바다에 가능성의 에너지로 흐르게 하는 힘.
그것은 과연 어디로부터 흘러나올까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기도 한 그 근원을
우린 우주라 부르기도 하고 종교적 관점에서는 창조주의 사랑이라고도 합니다.
각자의 믿음과 신념에 따라 그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외부에서 무언가 찾아올 복이나 운.
그것을 차단하는 것과 반가이 맞이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내릴 선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바운더리를 좁게 만들고
그 안에서 웅크리고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면,
에너지의 흐름을 차단하기 쉽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사람을 만나라는 말이 아닌,
내면의 웅크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어깨를 펴고 두려움 없이 그저 바라보려는 마음가짐.
그것에서부터 삶의 또 다른 이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좋아 보이는 것 뒤의 사악함을 감지하기도 하고,
때론 그 반대의 경우도 목도할 수 있죠.
에너지는 서로 공명하며 흐릅니다.
선한 에너지는 주파수가 높고 상위의 단계에서 흐르죠.
그래서 가볍고 밝으며 널리 퍼져있습니다.
좋지 않은 에너지는 반대로 주파수가 낮고 하위 단계에 놓여있습니다.
무겁고 응집되어 마치 탁한 응집체로서 내면에 고입니다.
내 마음의 상태를 바라보면서
바로 이 에너지의 흐름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외부의 선악을 느낄 수 있죠.
그것은 이성적인 판단이나 감정의 미혹됨을 넘어서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과 감각으로 찾아오게 됩니다.
판단이 아닌 분별함.
비판이나 정죄가 아닌 근원의 거리를 조절함을 인식하게 되면
마음에 새로운 현명함이 깃듭니다.
이는 문자로 배울 수 없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죠.
삶은 흐른다고들 합니다.
그 흐름의 물결은 바로 온 세상에 흐르고 있는 에너지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현명하게 다룰 줄 아는가.
거기에 우리 생의 기쁨과 가치도 담겨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