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이 인형을 만난 것은 스물한 살 때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당시 막 떠오르기 시작한 무역회사의 잘 나가는 중역이었는데, 그즈음에는 해외 출장을 그야말로 밥 먹듯이 다녔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작은 기념품을 하나씩 사 들고 돌아와 거실의 진열장에 채워 넣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에 출장 갔던 아버지가 들고 온 게 이 인형이었다. 그 당시에는 비스크 인형이라는 것이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았던 데다가, 서양 영화―특히 호러 영화―를 통해서나 봤던 것이 전부라, 남자도 어머니도 처음부터 상당히 꺼림칙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형이라는 걸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외관인데도 피부만큼은 정말 사람의 피부처럼 매끈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 미묘한 괴리가 말 그대로 불쾌한 골짜기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정말 불쾌했던 것이 눈이었다.
“이런 종류의 인형에서 눈을 표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이 인형의 경우엔 유리로 눈알을 따로 만들어서 집어넣는 방식을 썼더군요.”
인형의 얼굴과 눈의 재질이 다르다 보니 눈만 묘하게 빛이 났는데, 그것이 마치 눈알만 살아있는 시체처럼 보여서 그렇게 꺼림칙할 수가 없었단다. 심지어 눈알의 방향이 완전히 고정된 것도 아니어서 큰 힘을 주지 않고도 눈알을 돌릴 수 있었는데, 가끔은 사람이 안 보는 사이에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가 있고는 했단다. 부지불식간에 눈이 마주치기라도 했다면 정말 끔찍했으리라.
“때때로 그 파란 눈이 저를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더군요. 실제로 그런 건 아니었지만요. 하지만 어머니는 인형의 그 눈빛을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점점 인형의 그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어요. 언젠가는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아무리 눈알을 돌려놔도, 결국은 반드시 안방을 바라보고 있다고. 인형의 시선이 어머니를 따라오고 있다고요. 하지만 정말로 끔찍한 건 인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였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할까? 들으면 들을수록 아주 어둡고 차가운, 시커먼 안개 같은 것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고해성사하듯 털어놓는 남자의 고백을 거절하는 것도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어차피 새벽 3시의 불 꺼진 비행기 안. 아직 여덟 시간은 더 가야 한다. 게다가 딱히 잠이 올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일단 남자의 이야기를 좀 더 듣기로 했다.
이야기는 한참을 더 이어졌다. 남자와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그 인형을 불길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이 집안의 공기를 완전히 바꿔놓고, 점점 존재감을 키우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사다 놓은 물건이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찝찝한 일은 하나둘, 더 늘어갔다.
어느 날 밤, 남자는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가려다가 괴상한 장면을 보고 말았다. 거실의 풍경을. 밤늦게 들어온 아버지가 넥타이도 풀지 않은 채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아니, 그냥 앉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형을 안고 있었다.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아버지는 인형에게 화장을 시키고 있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화장품들로. 아버지는 인형의 얼굴에 정성스럽게 화장을 한 다음, 그 인형을 진열장에 다시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화장품을 주섬주섬 가방에 담아 넣고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아버지가 안방에 들어간 후에 남자는 슬며시 거실로 나와 아버지의 가방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파운데이션이며 립스틱 같은, 아마도 샘플로 보이는 아주 작은 화장품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했던 게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