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인형과 여행하는 남자 (6)

by 허아른

“다르게 보였다….”

“예, 어릴 때는 그것이 다 불길하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과는 조금 다른… 슬픈 일이었달까요.”

“….”

“아마 그 인형을 가져오던 즈음에 아버지는 이미 불륜 중이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출장이 잦았던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겠지요.”

“상대는 그 재혼 상대인가요?”

“예, 확실합니다. 왜냐면… 왜 그 사람이 인형과 닮았다고 느꼈는지 나중에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아마도 화장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화장품?”

“예, 만약 인형에 바른 화장품과 그분이 사용하는 화장품이 같은 것이라면, 보기에는 달라도 냄새는 같을 거 아닙니까.”

“아…!”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버지의 괴벽도 이해가 가더군요.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딱히 인형에 화장품을 바른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었어요. 오히려 새로운 취미라고 과시하는 것처럼 보였죠. 실제로는 아마도 자기 몸에서 어렴풋하게 나는 화장품 냄새의 원인을 감추려고 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불륜 상대와 만나고 돌아온 날에는 화장품을 들고 와서 인형에 화장을 했다. 자기 몸에서 화장품 냄새가 나는 이유를, 냄새에 민감한 어머니로부터 숨기기 위해. 그녀의 화장품으로 인형에 화장을 하고 돌보는 사이에, 그 인형이 그녀의 분신처럼, 대용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랑스러움이 샘솟아 인형에게 밀어를 속삭이고, 밤에는 껴안고 자게 되었다. 그리고 때때로 뒤척이다가 인형을 침대 구석에 밀어 넣고, 눈치채지 못한 채 그대로 출근하기도 했다.


“그저, 그뿐인 이야기 아니었을까요?”

“아… 그러면 아버님이 이혼 후에 인형을 가져가지 않았던 이유는….”


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에겐 더 이상 대용품이 필요 없게 되었으니까요.”


그런 추측을 하고 나니 인형이 더는 불길하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그 버려진 꼴이 가련하게 느껴졌달까. 그 인형의 신세는 어찌 보면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어쩐지 점점, 남자도 인형에게 애착을 느끼게 되었다. 어머니가 그 몸을 정성스럽게 닦는 것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그 머리를 빗겨주는 것을 볼 때마다. 눈알이 파여 텅 비어버린 공간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대로 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게는 아마 그 인형이, 가정이 행복했던 때를 증명하는 어떤 상징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남자가 인형을 버릴 때마다 어머니는 나가서 다시 그것을 주워 왔다. 버린 인형이 다시 나타난 것은 저주도 뭣도 아닌, 어머니의 집착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인형을 사랑하게 되었다. 점점 더 어린애처럼 인형에 집착했다. 때로는 머리를 빗겨주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마치 어린 딸을 돌보는 것처럼….


“‘너는 파리에서 왔지? 파리는 어떤 곳이니? 거기엔 친구들이 많이 있니?’ 분명 정상적인 대화는 아니었죠. 물론 인형과 대화하는 시점에서 정상이니 아니니 하는 말 자체가 모순입니다만…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행복했겠죠.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기묘한 행복을 보는 제 마음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느새 남자의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그렇구나. 오래된 인형이 이렇게 깨끗하게 보관되었던 것은, 어머니가 매일 보살폈기 때문이구나. 하지만 이 인형이 남자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은.


“어머님께서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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