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큰 여자

허아른 괴담록

by 허아른


작은 마을에 이사를 왔다. 하나뿐인 동생과 단 둘이서. 이것이 마지막 이사가 될 것이다.그렇게 생각했다.


오래 살 수 없으리란 건 알고 있었다. 나도, 동생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원하는 것이 있다면 동생보다 하루라도 오래 사는 것. 마지막까지 동생에게 미소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나의 꿈.


좋은 동네였다. 그림책에나 나올 것 같은 그런 마을. 이사 온 첫날에는 지나가던 이웃들이 웃으면서 관심을 보여주었다. 다들 친절했다.


이 마을에 한번 오고 나면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다들 입을 모아서 그렇게 말했다. 다행이다. 나와 동생의 마지막 안식처. 그것이 이런 동네라서.


이사온 집은 아주 작아서, 방이라고는 침실 하나 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작은 이층침대가 있었다. 오히려 좋다. 동생은 위층에, 나는 아래층에. 자매가 함께 잠들 수 있다.


이사를 마친 첫날 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침대 위에서 잠이 들었다. 나무 침대라서 위층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귀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자장가처럼, 엄마 손에 흔들리는 요람처럼...


요람 속에서 올려다 본 엄마의 얼굴을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잠결에 소리가 들린 것 같다.


흐느끼는, 아니

울음을 참는 소리.


다음날 아침, 동생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다고 했다. 키 큰 여자가 침대 맡에 서서, 자기 얼굴을 내려다 보는 꿈.


아주아주, 키 큰 여자가 말이다.


나는 말없이 동생을 안아주었다.


달랬다.


동생은 이내 울음을 그쳤지만. 악몽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언니를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낮부터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원래대로라면 이사 온 우리가 인사를 다녀야 할 텐데. 모두들 동네는 마음에 드는지, 집은 어떤지, 잠자리는 괜찮은지, 하나하나 물어보며 살펴주었다.


다행이다.

이 마을이, 이 집이.

우리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으면.


밤이 되어 우리는 다시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동생은 위층,

나는 아래층.

잠이 들었다.

잠결에...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아침에 동생은, 위층 침대에서 울고 있었다.


또, 키 큰 여자가 나타났다고 했다. 이번엔 꿈이 아니었다고. 방금 전까지, 언니가 올라오기 직전까지 있었다고.


나는 그런 건 없다고 말해주었다.


나에겐

보이지

않았다고.



다음날도.

삐걱삐걱.

흑흑.


다음날도.

삐걱삐걱.

흑흑.


...이상하게도, 동네 사람들은 매일매일 인사를 왔다. 친절하게 웃으며 잠자리는 괜찮았냐고 물어 주었다. 어쩐지, 머리가 아프다.


날이 갈수록 그 친절한 웃음 뒤에는. 뭔가 친절함 외의 다른 것이 느껴졌다. 그래, 예를 들면...


호기심.

혹은.

기대가.


또다시, 밤.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보채다가, 문득 어떤 상상이 떠올랐다. 무서운 상상이. 스스로 떠올린 상상에 소스라치게 놀라, 침대 바깥쪽을 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동생은 울고 있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그런 무서운 일이 있을리가.


자신의 상상을 부정하면서도 나는 몸을 침대 바깥으로 빼서 위를 올려다 보았다.


보였다.

상상했던 그것... 발바닥이 내 머리 위에 있었다.


그것은,

천장에 목을 매고.

머리를 떨군 채 이층침대 앞에 매달려 있는 여자의 발바닥이었다.


나중에야 들었다. 동네 사람들이 웃으며 이야기해주었다. 우리보다 먼저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다들 키 큰 여자를 보았다고 한다.


키 큰 여자를 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본 키 큰 여자들은 다 다른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제야 나는 동네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인 관심이, 무엇에 대한 관심인지 이해했다.


이번엔, 어떤 키 큰 여자가 나올까.


우리들은 그 집을 나와 변두리의 작은 방으로 급하게 이사했다.

이제 그 여자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를 따라오지 않았어도.


아마 그 집에서 여전히 침대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알고 있다.

내 생명은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꿈을 이루었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단둘만의 생활이다.


나와

그리고 침대 위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는,

키 큰 동생과.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