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

악몽은, 경찰서에서 시작되었다.

by 허아른


유미가 경찰서를 찾은 것은 일요일 오후의 일이었다.


유미는 어깨를 움츠리며 문을 열고 들어가, 이쪽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치를 살폈다. 유미의 이상한 태도를 눈치챈 젊은 남자 경관이 다가가자, 유미의 어깨가 움찔, 떨었다.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시선을 돌리는 그녀에게, 경관이 말을 걸었다.


“어떻게 오셨죠?”


생각보다 다정한 목소리에 살짝 긴장이 풀렸다. 유미는 더듬거리다가, 심호흡을 한번 하고 용건을 말했다.


“스, 스토킹 때문에... 신고하려고요.”


남자는 안쓰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이쪽으로 오시죠.”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듯이 사선으로 서서, 여자의 발걸음에 맞춰 걸으며 의자로 안내했다. 그리고 자기도 그 맞은편에 앉았다.


“우선, 진술서를 써야 하는데, 처음이신가요?”

“네? 스토킹이요?”


남자는 다시 딱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젓고 말했다.


“아뇨, 진술서 쓰는 거요.”


유미는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다.


“저... 처음이에요.”

“어려운 일 아니니까 긴장 안 하셔도 돼요.”


남자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일어나더니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유미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달라고 한 적 없는데도, 물어보면 괜찮다고 사양할까 봐 말없이 가져온 것이겠지. 자상한 남자다.


그렇게 생각하며 유미는 종이컵에 두 손을 가져다 댔다. 따뜻하다.


“우선은 힘드시겠지만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말로 하고 나면 생각도 정리가 되니까 진술서를 쓰기 더 편해지실 거예요.”

“네... 근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음...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유미는 고개를 갸웃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2주 전 정도?”

“아는 사람인가요 모르는 사람인가요?”

“모르는 사람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황급히 저었다.


“아니, 그게... 모르는... 그러니까...”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은 거네요?”

“...네.”

“편지를 보내거나 메시지를 남기거나 하나요?”

“아뇨, 그런 건 전혀...”

“그러면, 미행당하거나 감시당하는 기분을 느낀 건가요?”


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처음 그런 기분을 느낀 장소는 어디였나요?”

“그, 아르바이트를 하는...”

“직장이군요.”

“네.”

“어때요? 쉽죠?”


남자는 얕은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고, 유미도 살짝 웃음을 지었다. 심각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처음 들어왔을 때의 긴장은 이미 다 풀린 상태다. 조금씩 조금씩, 유미는 더 많은 말을 하게 되었다.


처음 유미가 그 그림자를 발견한 것은 2주 전, 아르바이트를 하는 꽃집 근처에서였다. 해가 긴 날, 꽃집 바로 옆 골목에서 바깥으로 드리운 사람 그림자. 골목이라고는 해도 벽과 벽 사이의 틈일 뿐이라서, 거기에 사람이 들어가 있을 이유는 없다.


처음엔 그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아르바이트라고는 해도 아는 사람의 꽃집을 잠깐씩 봐주는 정도였다. 출퇴근 시간도 들쭉날쭉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 골목에는 인기척이 있었다. 언제나 골목에 서있는 사람. 조금, 무서웠다. 가벼운 마음으로 꽃집 주인에게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딱 그 정도의 기분에서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꽃집 주인에게 들은 대답은 그녀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꽃집 주인은 단 한 번도 그런 인기척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유미가 있는 시간에만 나타나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데도 딱 그 시간에만. 무서운 일이었다.


누군가 내 출퇴근 시간에만 거기에 서 있다.


왜일까, 왜.


‘스토커’라는 세 글자가 머리에 떠올랐지만, 유미는 그것을 애써 지워버렸다. 하지만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출근할 때, 퇴근할 때, 골목 쪽에 신경이 쓰이지만 돌아볼 용기는 없었다. 집에서 나오는 길이,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것을 눈치채게 된 것은. 그러니까, 누군가의 기척을.


그 기척은 익숙해질수록 점점 자주 느껴졌다.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들른 편의점에서, 그리고... 집에 들어가는 길목에서.


깨달았다.


상대는 출퇴근 시간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니다. 언제나 그 정도 거리에서, 언제나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도무지 짐작이 가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목적을 알 수 없다. 하지만 계속해서 따라다닌다. 왜일까, 왜 따라다니는 걸까.


혹시 상대는, 쾌락 범죄자 같은 건 아닐까. 범행 상대로 나를 점찍었을 뿐, 그래서 나를 살피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아닐까.


무서웠다. 발을 떼지도 못할 만큼. 몸이 떨렸다. 물을 마시려다 몽땅 흘리고 말았다.


그래서, 경찰서를 찾아왔다.

생전 처음으로.


남자에게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고 나자, 떨림이 멎었다. 마음도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경찰서 안. 스토커로부터 더 멀어질 수 있는 곳.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따뜻함은 아마도 안전이라는 감각일 것이다. 아주 오래 잊고 있었던.


“지금 이야기하신 것들을 쓰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종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서랍에서 볼펜 하나를 꺼내 물티슈로 닦고 유미에게 주었다. 세심한 남자다. 그 세심함이 마음을 좀 편하게 만들어 준다. 유미는 차분한 마음으로 진술서를 쓰고, 남자에게 볼펜과 함께 내밀었다.


남자는 볼펜을 물티슈로 닦아 서랍에 다시 넣고는, 진술서를 한번 둘러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시점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많지 않아요. 우선 신변보호 요청을 하실 수 있고...”

“할게요.”


유미의 급박한 대답에 남자는 웃음으로 답했다.


신변보호 요청을 하고 나서, 유미는 스마트 워치를 받아 차고 경찰서를 나왔다. 신변보호라고 해도 대단한 건 없었다. 그저 위급상황에 스마트 워치 버튼을 누르면 위치가 통보되어 경찰이 출동한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될 테니, 저도 주변을 지나갈 때마다 한 번씩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자의 그 약속은 아마도 경찰 규정 같은 것과는 상관없는, 순수한 호의이리라. 경찰서 밖으로 나온 유미의 눈에, 유리문 너머로 남자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유미가 앉았던 자리를 물티슈로 닦고 있었다.


남자는 약속을 지켰다. 다음 날, 꽃집에 나타났던 것이다. 옷까지 갈아입고 손님인 척하면서.


“옆의 골목도 들어가 봤어요. 아무도 없더라고요. 하지만 분명히 인기척이 있었어요. 누군가 다가오는 것 같으니 숨었거나 도망쳤겠죠.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남자는 근심 어린 눈으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표정은, 어쩐지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음 날에도 남자는 꽃집으로 찾아왔다. 남자의 손에는 두 번 접은 하얀 종이가 들려 있었다. 밤을 새우기라도 했는지 눈가에 기미가 그득했다. 남자는 종이를 유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집에서 꽃집까지의 경로를 좀 변경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우범 지역이랄까... 통계적으로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거나, 으슥한 곳 같은 델 피해서 좀 고민해 봤어요.”


유미는 그 지도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보단 조금 돌아서 가는 길이지만, 크게 불편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날부터, 유미는 지도에 그려진 경로로만 다녔다. 그렇게 다니기를 몇 차례, 언제부턴가 문제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지도가 효과가 있었던 걸까.


어쩌면 마음이 안정되어서, 불안이 사라져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스토커라는 게 진짜로 있긴 했던 걸까.


유미의 마음은 점차 안정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에 경찰차가 불쑥 나타났다. 그 남자였다.


“타세요”


운전석에서 창문을 내리고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얼굴은, 시체처럼 상해 있었다. 며칠을 앓기라도 한 것처럼. 뭔가 알아낸 걸까? 어쩌면, 지금 스토커가 경찰에 잡혀서 경찰서에... 뭔가 물어보려 했지만, 남자의 얼굴이 너무 아파 보여서 말없이 옆자리에 탔다. 남자는 말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가는 내내, 남자는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얼굴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왠지 그 옆모습이, 무서웠다. 어느새, 차가 멈췄다.


“내리세요.”

“여긴...”


유미는 당황해서 창밖을 보았다. 여긴, 경찰서가 아니라 꽃집 앞이다. 당황해서 남자를 돌아보았지만, 역시 뭔가를 물어볼 분위기는 아니었다. 유미는 조용히 내려, 문을 닫았다. 꽃집 안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설마 어쩌면, 데려다준 걸까? 경찰차로 데려다주면 안전하니까? 그리고 경찰차를 보고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유미는 유리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경찰차는 아직 거기 서 있었다. 차 안에서 남자가 물티슈로 조수석 쪽을 닦고 있었다.


어쩐지, 마음이 편해진다.


퇴근 시간이 되어 꽃집을 나섰을 때, 다시 경찰차가 유미의 앞에 멈췄다. 유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차에 탔다. 남자는 아까보다 한층 더 신경질적인 표정이 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경찰차. 경찰차가 이렇게 살가운 존재가 될 줄이야. 그렇게 생각하던 즈음, 유미는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 남자는, 어떻게 출퇴근 시간을 알고 있었던 걸까. 어쩐지 어깨에 소름이 돋았다. 알고는 있다. 스토커와는 다르다. 이 남자는 완벽한 신변보호에 집착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다.


혹시라도 몸이 닿을까 봐 어깨를 움츠리게 된다. 그 남자가 중얼거리는 한마디 한마디에 깜짝 놀라게 된다. 목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남자의 중얼거림에는 어느새 욕설이 섞여 나오고 있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꽃집 따위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으면 좋을 텐데...”


몸이 더 움츠러들었다. 화가 난 남자의 얼굴을 보는 게 무서워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이지 않으니 그건 그것대로 무서웠다. 남자의 중얼거림은 조금씩 더 커졌다. 이러다, 때리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그렇게, 지옥 같은 드라이빙이 끝나고, 차는 집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려 꾸벅 인사를 하고, 차 문을 닫았다.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가다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또 조수석을 물티슈로 박박 닦고 있었다. 결벽증이라는 게 저런 걸까.


내일, 또 오려나.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남자는 경찰차로 유미를 데려다주었다.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점점 더 크고 험악해졌고, 얼굴 표정도 점점 무서워졌다. 경멸, 혐오... 무슨 바퀴벌레나 똥이라도 보는 것 같은 표정. 그런 것에 시달리는 나날을 보내며, 유미의 얼굴도 점점 수척해져 갔다.


그러는 사이에, 조금씩 남자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물티슈로 유미가 앉은자리를 박박 닦던 남자의 모습. 결벽증. 그것은 유형의 것에만이 아니라 무형의 것에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모든 게 완벽하기를 바라는 남자. 자기 계획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남자.


신변보호 프로그램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꽃집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완벽하지 않으니 지도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지도로도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출퇴근길에 경찰차를 가지고 나타났다. 그리고 매일 유미를 태워 날랐다.


하지만, 타인이 조수석에 앉은 것을 견딜 수 없는 이 남자.


매일매일 데리러 올 때마다, 매일매일 차를 더럽히는 존재, 유미에 대해 증오가 끓기 시작했다. 그런 것이다. 그 증오는 임계점까지 왔다. 유미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자칫하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스토커가 아니라 경찰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신변보호도 이제 필요 없다고. 차에는 타지 않겠다고. 신고도 취하하겠다고. 그렇게 말하자. 그렇게 결심하고 나서도 가슴이 계속 떨려왔다. 그런 말을 하면, 강제로 차에 태우는 게 아닐까. 화가 나서 폭행하는 게 아닐까.


그래도, 말했다. 용기를 내어 말했다.


남자는 의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떠났다. 잘됐다. 이제 다 된 거야. 스토커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몰라. 다시 혼자서 꽃집과 집을 왕복하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되고 나자 다시 불안감이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척이 다시 느껴졌다. 점차, 점차 더 무서운 존재감으로. 유미의 머릿속에서 칼을 들고 있는 남자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그 이미지는 점점 커져서, 유미의 정신을 좀먹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경찰에 신고하기 전보다 더, 유미는 더 피폐해져 갔다.


어쩌지, 다시 신고할까.

하지만 경찰은, 무섭다.


경찰과 스토커, 둘 중 어느 쪽이 더 무서운 것인지 유미는 분간할 수 없었다. 그래서였다. 꽃집에 찾아온 남자를 보고 비명을 질러버린 건.


남자는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두 번 접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 남자의 표정은 더는 신경질적인 얼굴이 아니었다. 여전히 수척했지만,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니, 넋이 나간 것 같다고나 할까. 유미를 마주 보고 있지만, 동공이 풀려 있었다.


맛이 갔다.


유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남자는 종이를 내밀었다. 유미는 그것을 받아 펼쳐 보았다. 지도였다. 꽤나 복잡한.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길로만 다니면 안심입니다. 완벽한 방범 지도예요.”


그렇구나.

그 후로도 계속 완벽한 방법을 생각하다가, 이걸 만들고 맥이 풀려버린 거구나.


유미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는 체념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남자는 꽃집을 나갔다. 남자를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유미는 알고 있었다.




유미가 시체로 발견된 것은 며칠 후였다.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골목길에서.


살해당하는 장면이 CCTV에 찍혔기에 범인은 금방 잡을 수 있었다. 유미가 가지고 있던 지도에 그려진 경로는 전부 그런 길이었다.


우범 지역,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

하지만, 모두 CCTV가 있었다.


남자가 생각해 낸 완벽한 경로, 그것은 CCTV의 사각을 지나지 않는 경로였다.

유미가 그 지도에 그려진 경로를 따라다녔던 것이

남자를 믿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모든 것에 지쳐버렸기 때문인지는,

이제 알 수 없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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