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아이

어린 도둑

by 허아른


선생님도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 같은 게 있나요? 지금도 선명하게 그 풍경이 떠오르는.


...없다고요?

그래요...


처음에는... 그래요. 열 살, 아니면 열한 살쯤이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하굣길에 동네 마트에 들렀을 때였죠. 마트라고는 해도 크고 유명한 대형마트하고는 달라요. 그냥 옛날 시장에나 있을 법한 그런 곳이었어요. 통로는 비좁고, 먼지 쌓인 장난감이나 조잡한 물건들이 이리저리 마구 쌓여 있는 그런 곳. 진열대 사이사이를 어깨로 비집고 들어가야 할 것 같은 그런 곳 말이에요.


그래도 거기서 가끔 보물 같은 장난감을 발견하기도 해요. 구석구석에 뭐가 있는지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요. 어렸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요. 미지의 것들이 숨은 골목길들이 나란히 뻗어있다고나 할까... 가끔 그런 골목길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기도 하고요.


선생님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가 있나요? 연락한 지 오래되었지만, 머리에서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 친구요. 없다고요.


저는 선명하게 기억해요. 그 비좁은 통로들, 거기서 만난 얼굴들. 그래요. 그중에서도 그 아이를 똑똑히 기억해요. 작은 장난감 반지 한 움큼을 아무렇게나 집어서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던 그 아이를 말이에요.


그날, 전 그 마트에서 친구가 도둑질하는 걸 보고 말았어요. 친구라고 해도 친한 친구는 아니었어요. 같은 반 아이면 다 친구... 어릴 땐 그렇게 배우잖아요? 저 앤 친구야. 그 말에 딱히 의심을 가지지 않죠. 어린 시절의 첫 친구는,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학교가 만들어주는 걸지도 몰라요.


이름이 관계를 규정할 때가 있죠. 그때까지 말 한 번도 나눠본 적 없는 아이인데, ‘친구가 물건을 훔쳤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어요. 친구라는 단어와 물건을 훔쳤다는 문장. 긍정적이어야 할 말과 부정적이어야 할 말. 그 둘이 함께 다가오는 그 불편한 기분.


그 장면을 보고 나서는, 많은 것들이 불편해졌어요. 물론 그 친구의 존재도 불편해졌죠. 그리고 그 마트도 불편해졌어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그런 장면.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 그걸 목격하고도 가만히 있었던 자신이 불편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요.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보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그런데요, 불편하다는 것만큼 강렬한 기분도 없죠?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그건 점점 마음속에 파고들어요. 계속 생각하게 만들죠. 그때 난 어떻게 해야 했을까.


말렸어야 했나. 아니면 신고라도 해야 했을까. 지금이라도 뭔가 해야 할까. 선생님에게 말할까... 매일매일 그 생각에 빠져 있는 거예요. 웃기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그 친구에게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끼곤 했어요. 음... 정확히는 미안하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들키면 어쩌지, 그런 기분. 그 아이의 시선이 우연히라도 내쪽을 향하면, 고개를 푹 숙이곤 했어요. 뭔가를 들킨 것 같아서.


이상하죠? 도둑질을 한 건 그 아이인데, 내가 뭔가를 들킬까 봐 무서워한다는 게. 한동안은, 계속 그 아이를 피했어요. 사실 마주칠 일도 별로 없는데 말이에요.


그런데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얼굴을 피하면 피할수록, 그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커져만 갔어요. 그때는 그 감정을 스스로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젠 알아요. 어째서 그랬는지, 진짜로 미안했던 이유가 뭐였는지.


그 아이, 언제나 혼자였어요. 반 아이들 모두가 친구라고 불리지만, 진짜 친구는 없었죠. 그래요. 그거였어요. 저는, 내가 그 아이를 피한다는 사실 자체에 죄책감을 느꼈던 거예요. 그 아이를 혼자 있게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피하면 피할수록, 내가 그 아이를 혼자로 만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죠.


영원히 피할 수는 없어요. 집에 가는 길도, 학교 가는 길도 같으니까요. 어느 날 그때 그 마트에서, 그때 그 통로에서, 그 아이를 마주쳤죠.


왜 그럴 때 있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복잡한 문제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에서 정리될 때가 있잖아요. 선생님도 그럴 때가 있지 않아요? 없다고요. 참 매정하시네요.


제게는 그날이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단번에 깨달은 날. 나는 이 아이를 혼자로 만들지 않겠어. 그렇게 단숨에 결정하게 된 날.


저는 그 아이를 보고 웃었어요. 최대한 상냥하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반드시 말이 필요한 건 아니죠. 저는 그 아이에게 뭔가 사과하거나 제안하는 대신에, 손을 뻗었어요.


그리고 그 작은 손으로, 쥘 수 있는 만큼의 장난감을 집어서 제 주머니에 넣었죠. 그 아이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요. 이해했을 거예요. 그게 뭐였는지. 웃었거든요. 그 아이. 아주 밝게.


도벽이 있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그 아이를 친구로 받아들이기 위해, 그 아이 앞에서 일부러 도둑질을 한다. 이게 어떤 기분인지 이해하시나요? 그래요, 모르시겠죠.


굉장히 친한 친구가 된 건 아니지만, 그 후로도 우린 때때로 마주치면 웃음을 나누었어요. 그 아이에게 특별히 친한 친구가 생기진 않았지만, 그래도 훨씬 밝아졌어요. 그리고 그 아이는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게 되었죠.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누군가 나를 이해하는 한 사람, 그게 있는 인생과 없는 인생은 다르니까요.


시간이 흘러 졸업을 하고, 각자 꽤 멀리 떨어진 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그 아이의 이후 소식은 듣지 못했어요. 아이들의 교우관계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그래도 때때로 그 아이를 떠올렸죠.


어른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떠올리고, 떠올렸어요.


혼자라고 느껴질 때마다.

그래서 도둑질을 할 때마다.


그래요. 힘들 때마다, 누군가 날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마다, 물건을 훔치게 되었어요. 필요한 걸 훔치는 것도 아니죠. 작은 화장품병 하나, 아니면 참치캔...


이혼을 하고 나서는 더 잦아졌어요. 그렇게 훔쳐온 것들은 쓰지도 못하고, 한쪽 찬장에 쌓아뒀어요. 무슨 전리품 전시하는 것도 아닌데.


몇 번 걸렸죠.


경찰서도 자주 갔고요. 그러다 보니 재판까지 받게 되어서 감옥에 가나보다 했는데. 법원에서 치료 명령을 받았어요. 살면서 한 번도 상담이라는 건 받아본 적이 없는데 법원의 명령 때문에 받게 된 거죠. 그랬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난 거예요. 그때의 일 따위 까맣게 잊고 있는. 저에 대한 추억 따윈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도벽이나 우울증 같은 것과는 한없이 인연이 없는 얼굴을 한, 하지만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을요.

선생님

정말 저 기억 안 나세요?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잊어버릴 수가 있어요?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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