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 내리던 날
1층집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지나가는 사람들, 자동차, 아무것도 없는 도로. 그런 것들. 밖에 있을 때와 눈높이는 비슷하지만,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다. 그래, 마치 TV화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 TV앞에 앉은 시청자가 되어 나와는 상관없는 풍경을 아주 멍한 눈으로 구경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그랬다.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이란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시간,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장대비가 내리던 그날 밤에는, 뭔가 달랐다. 그날밤의 풍경에는, 뭔가 의미가 있었다.
그날 밤. 부술 듯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무심코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사람의 형체를 발견했다. 검은 우비를 입은 사람이 창밖을 지나쳐 달려가고 있었다. 창문 바로 앞을 스치듯 지나는 바람에 팔꿈치 아래부터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사람이 달려가고 있었던 건 확실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저 검은 우비를 입은 사람이 달려가고 있을 뿐인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왜일까.
또다시 장대비가 내리던 어느 밤, 나는 그 형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지난번처럼 검은 우비를 입고 달려가는 모습을.
"똑같다"라고 생각했다. 뭐가 똑같은지 바로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어쩐지 똑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나는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장대비가 내릴 때마다. 반투명해서 잘 보이지 않는 형체의 레이어가 겹겹이 중첩되면서 또렷해지는 것처럼, 점차 내 기억 속의 그 모습은 또렷한 형상이 되었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고도 그 형체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을 때쯤, 그 형체가 기억에 깊이 남은 이유를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위화감이었다.
달려가는 그 사람의 상체는 왜인지 앞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100미터 경주에서 전력질주하는 스프린터처럼. 그렇다고 정말로 달리기 선수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게, 나는 그 사람의 팔꿈치 아래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달리기 선수는 둘째치고 평범한 사람들조차 달릴 때면 보통 하는 행위, 그러니까 팔 흔들기를 그 사람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쯤 되니 궁금해졌다. 팔꿈치 아래뿐만 아니라, 하체의 움직임도. 다리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창문 앞에서 일어서서 내려다보면 확인할 수 있었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어디로 달려가고 있었던 걸까. 장대비가 내리고, 그 형체를 다시 목격한 다음날, 나는 밖으로 나갔다. 그 남자가 달려가던 방향으로, 휠체어를 끌고 실버타운의 뒷길을 따라 산책을 나섰다. 사실상 외길이었다.
벽을 타고 한참을 간 끝에 도착한 곳은 고철 폐기장이었다.
거기에는 수많은 휠체어들이 버려져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 남자가 그런 이상한 자세로 달렸던 이유를 이해했다. 그리고, 공포와 함께 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장대비 내리던 날, 저 휠체어 안에는 사람이 있었을까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