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기이한 골동품 상점

by 허아른

“사랑이라고요?”


이런 뜬금없는 단어가 튀어나올 줄이야. 탯줄로 탯줄을 감은 것에서 어찌 사랑을 연상할 수 있단 말인가?

남자는 히죽 웃으며 내 반문에 대꾸했다.


“훌륭한 사랑이지요. 후대는 선대를 감싸안아 보호하고, 선대는 후대를 업신으로서 지켜주니 이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결국 이 항아리는 과거와 미래를 순환한 사랑의 결실 같은 것입니다.”


나는 잠깐 멍해져서 생각하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사랑의 결실이라니, 마치 아기라도 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남자는 안쓰럽다는 듯이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가 사랑의 결실이라는 건 그저 비유에 불과하지요. 사랑의 진정한 결실은 그 사랑으로부터 태어나는 또 다른 사랑입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결실이 아닐까요?"


사랑, 사랑, 사랑.

괴이하다. 어질어질하다. 이런 대화라니, 이런 기묘한 것을 두고, 이런 사람을 홀리는 것 같은…… 사랑…… 아래로 아래로…… 깊이…… 눈이 점점 똬리에 끌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나는 고개를 숙여서 점점…… 그 안으로…… 사랑…….


“크흠!”


나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남자가 히죽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어느새 내 두 팔이 항아리를 껴안고 있었다. 나는 괜히 민망해져, 팔을 스르륵 풀었다.


“너무 오래 보시면 안 됩니다. 사랑에 홀려버리니까요.”

“홀린다…….”


사랑에 홀린다니,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은 들어봤어도. 하지만 이 항아리에게는 꽤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몰라도 홀린다는 말 자체는.


“약 같은 건 비교도 안 돼. 그 집의 물건들은.”


그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해가 간다.


“예. 그리고 뚜껑을 너무 오래 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항아리가 열려 있으면 혼백이 날아가버린다고 하니까요. 게다가 산 사람의 혼백이 죽은 사람의 혼백과 너무 깊이 접해도 안 되고요.”“그런 미신 같은 이야기를…….”


분명 자기 입으로 그런 것은 믿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지요? 정말 미신 같은 허황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결국 그런 걸 믿는 사람들이 이런 항아리를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나치게 솔직한 말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묘한 말이다.


“판 적이 있단 말씀입니까?”

“예. 하나 팔았지요. 작년쯤에.”

“하나만 있는 게 아닌 거군요.”

“예. 몇 개가 있습니다. 전부 그 사두혈 근처에서 나왔지요.”


이런 묘한 태항아리가 몇 개씩 있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그…… 혹시 어떤 사람이 사 갔습니까?”

“아주 강한 가택신이 필요한 사람이 사 갔지요. 한 가문의 조상신들이 다 모여 있으니, 그 영험함도 그만큼 클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항아리를 사 간 사람은 고3 수험생 딸을 둔 학부모였다고 한다. 딸이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딸의 대학 진학을 기원한답시고 온갖 이상한 주술거리를 모으다가 여기까지 흘러든 모양이다. 꽤 비싼 값을 불렀는데도 그녀는 옳거니 하며 도자기를 집어갔다.


“그래서 대학은 합격했답니까?”

“아뇨. 시험도 안 친 모양이더군요.”

“그건 또 어찌 된 일이랍니까?”


남자는 문발 쪽을 흘깃 곁눈질하더니, 턱을 긁으며 대답했다.


“그게 말이죠. 또 재미있는 사연이 있습니다.”


여자는 도자기를 딸의 공부방에 두었다. 딸에겐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그 딸도 마침 공예품 따위를 좋아하는 고풍스러운 취미를 가졌던지라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고 한다. 딸은 그 도자기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자주 들여다보고 틈틈이 먼지를 닦기도 했더란다.


“아까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너무 들여다보면 홀린다고. 점점 그 아이는 공부하는 시간보다 도자기를 만지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지요.”

“그래서야 성적이 떨어질 만도 하군요.”

“성적이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엔 방에 틀어박혀서, 하루 종일 도자기만 들여다보게 되었답니다.”


딸이 방에 틀어박히자 엄마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하지만 평소에도 도통 대화가 없었기에, 대화가 완전히 끊기고 나자 더욱 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가끔씩 딸의 방을 들여다보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무얼 하고 있나 슬쩍 들여다보면, 딸은 도자기의 겉면을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마치, 도자기를 보살피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그 태도가 꼭, 노인의 등을 닦아주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노인의 등을 닦는다. 조상을 보살핀다. 평소라면 이런 표현에서 느꼈을 법한 감정은 긍정적인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이처럼 끔찍한 표현이 있나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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