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실의 피아노

by 허아른

B씨가 다니던 학교에는 두 개의 음악실이 있었다. 하나는 수업과 동아리 활동에 쓰이는 진짜 음악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10년 전부터 쓰이지 않아 이른바 ‘구 음악실’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당시 학교가 전면적인 내부 공사를 하며 공간을 재배치했는데, 어째서인지 설계도에 착오가 생겨 그곳만 공사를 피해갔다고 한다. 그렇게 남겨진 구 음악실은 애초에 예정에 없던 공간이기에 버려져 있다가, 점차 쓸모없는 물건들이 쌓이며 임시 창고처럼 변해버렸다.


이름만 구 음악실일 뿐, 그곳에 음악실다운 물건은 거의 없었다. 다만 딱 하나, 아주 오래된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하도 오래되어 건반을 누르면 '탁' 하는 타건음만 날 뿐 제대로 된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랜드 피아노 특유의 멋진 외관 덕분에 학생들의 포토존으로 자주 애용되곤 했다. B씨 역시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놀았던 적이 있고, 호기심에 건반을 이것저것 눌러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 피아노에 앉는 아이들 대부분은 피아노를 치는 척하며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을 뿐이다. 하지만 딱 한 명, 머리를 곱게 기르고 옷차림이 아주 깔끔했던 어떤 아이만큼은 달랐다. 그 아이는 가끔 구 음악실에 나타나 소리 나지 않는 피아노를 진지하게 연주하곤 했다. 사진을 찍으려는 것도, 치는 척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피아노에선 당연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아이는 마치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진지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째서인지 B씨의 귀에도 아주 따뜻하고 그리운 피아노 선율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연주에는 거듭 들을수록 연주자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신비한 매력이 있었다. B씨는 몇 번이나 말을 걸어볼까 망설였지만, 자신이 다가가도 아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 그저 피아노 연주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그 진지한 태도가 B씨에게는 마치 보이지 않는 벽처럼 느껴졌고, 결국 그 벽 너머로 노크조차 하지 못한 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B씨는 깨달았다. 아이가 자신에게 반응하지 않은 것은 연주에 열중해서도, 무시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단지 B씨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직감적으로 그 아이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서야 소리 나지 않는 피아노를 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소리가 나든 나지 않든, 어차피 들리지 않는 그 아이에게는 똑같은 피아노였을 테니까. 그래서 어떤 피아노로든 아름답고 그리운 선율을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B씨는 그 아이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음악회에서 자신이 이물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점차 음악실에 발길을 끊었다. 결국 그 아이와는 인사 한 번 나누지 못한 채 학교를 졸업했다.


어른이 된 후 언젠가, B씨는 같은 학교를 졸업한 세 살 터울의 언니와 술을 마시다 우연히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듣던 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거, 도시전설 같은 건데?"


B씨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언니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3년마다 그런 애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3년마다 그 피아노를 치는 아이가 나타난다는 거야? 똑같은 아이가?"


B씨가 살짝 긴장해서 되묻자 언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야. 피아노를 치는 아이가 '보이는 사람'이 3년에 한 명씩 있었다고. 그런 이야기야."


그게 대체 무슨 차이인지 몰라 B씨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언니는 남은 맥주를 쭉 들이켜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추억하는 듯한 아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 음악실은, 없앨 수 없다는 이야기지."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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