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소는 거칠다. 그들만의 방식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하대하고 살아남기에 바쁘다. 스물여섯, 군 제대 후 현장을 오다녔다. 평택 반도체 공장에서 반년, 부산에서의 인력 사무소 생활. 상처의 정도 와는 모순되게도 현장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엄마는 막내와 날 비교하신다. 안그럴것 같은 놈이 사람 대하는 일을 하고, 또 다른 놈이 몸쓰는 일을 한다고. 부엌서 식탁까지 그릇을 나르는데도 어머닌 불안해 하셨다. 3m채 안되는 거리를 스물이 넘은 남정네가 고작 그것 옮기는 과정. 어머닌 지금도 얘기 하신다. '고작 그것 하나 옮기는 게 왜이리 불안하냐'고. 이제 난 18피트 목재를 비틀거리며 어깨에 짊어진다. 이것은 현장에 대한 기록이자 애기 목수의 사색이다.
양평에 도착했을때는 집의 형체가 잡혀있었다. 목수 학교를 갓 수료한 나의 눈으로 보았을 땐 지붕 서까래와 합판, 외부 투습방습지 작업 정도 남은 것으로 보였다. 바쁜 와중 팀장님은 장갑을 벗고 내게 손을 건네셨다. 오히려 내가 인사를 흘려한 정도다. 오후 한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지라 숙소로 가 짐을 풀고 숨을 고를 줄 알았건만 급하게 작업화를 신었다. 학교에서 목조 주택이 지어지는 단순한 과정을 오개월간 배웠으나 눈에 톱밥이 낀듯 내가 해야할 일들이 선뜻 눈에 띄지 않았다. 일단 빗자루를 쥐었다. 청소는 마법이다. 현장은 어디든 정리정돈을 중시하며, 나또한 청소라도 하고있는것이 마음 편하다. 몰두중인 누군가에게 무엇을 하면 되는지 묻는 순간 나는 불청객이 된다. 그들의 친절함 정도가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물음을 다짐했을 때부터, 각기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중 논리가 뚜렷하지 않지만 접근 해야겠다 마음 먹은 사람에게 다가갈때, 그의 공구 사용이 멈추고 진동과 소음에 의해 나의 말이 힘없이 떨어지지 않을 순간을 파고 들 때, 그 사람의 입장에서 우물거림일 뿐인 나의 문장을 되물을 때, 되묻는 순간 위축이 되어 제대로된 단어를 선택치 못하고 말을 내뱉는 과정은 신이라고는 생각도 해본적 없는 내가 친구네 작은 교회 수련회에 참가하는 기분이다. 심지어 나를 초대하고자 한 인물은 친구와 어쩌면 예수님 뿐이다. 예수님마저 친구와 기도속에서 대화했을테다. 어찌저찌 태양은 낮은 산 아래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긴장해 덤벙대고 어쩔줄 몰라 했지만 내가 한 일들은 주변정리로 함축된다. 게다가 비소식에 내일은 휴무다. 방수포를 두르고 숙소로 왔다. 팀장님과 나만이 남고 팀원들은 고향을 향했다. 내가 부산에서 올라온지 여섯시간 채 안됐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