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더 된 오래 전의 과한 감흥을 감필로 수정한다.
지리산에서, 능선아! 능선아!
7월 그믐, 달빛과 별빛이 흐드러지게 쏟아져 내리는 제석봉~~~
거친 숨소리를 토하며 여기까지 올라온 우리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경건해진다. 통천문을 지나면서 여명이 있고 주위는 헤드랜턴이 없어도 될 정도로 밝아졌다. 조금 후에 상봉에서의 장려한 일출을 보게 될 것인지? 기대가 반이고 기대 난망이 반이다. 여기 하늘은 맑지만 저 너머, 저 너머의 구름밭을 알지 못하기에 반 정도만 기대한다.
드디어 천왕봉 정상, 정상에는 이른 새벽부터 서두른 부지런한 산객들로 북새통이다. 사진을 찍기가 어렵다. 우리는 사람이 많지 않은 동쪽의 조금 낮은 봉우리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동쪽하늘을 주시하면서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과 붉은빛을 받아들이는 산과 나무의 변화를 감상하였다. 순간순간 색조가 미묘했고, 밝은 톤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위는 청보라에서 청회색으로 그리고 붉은색으로 변하고...
아, 일출을 볼 수 있구나!!!
저 하늘의 서기를 보라, 지금의 운무의 세리머니는 천왕일출의 식전행사임이 틀림없다.
해는 항시 아침이면 떠오르는데 구름의 조화로 3대 선업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일출을 보는 것은 행운이고 행운은 선업에 기반한 것이리.
구름의 조화에 따라 천변만화하고 이에 우리가 일희일비하는데... 구름이 없으면 밋밋하다~~ 적당한 차단과 트임이 하늘에서 여러 조화를 부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환호한다. 고래로부터 똑같은 경치는 없었을진대 똑같이 느끼고 있는 시간이다.
일출은 짧은 순간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캔버스의 하늘은 주인공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배경으로 물러선다.
붉어진 능선에서 해는 조금 모습을 보이다가 쑥 올라왔다. 산봉우리가 알을 낳듯이~~ 해가 뿅~~~ 태어났다.
찬탄과 환호가 이어지고 모두가 기도자가 되고 시인이 되었다. 소리하고 노래했다. 모두들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환호성이 잦아들면서 구름이 옅어지고 은둔의 능선들이 제 모습을 보인다. 기념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찍히고 흐뭇하고 넉넉한 마음이 되었다.
몇 해전 추암에서의 일출도 멋졌지만 바닷가가 평면적이었다면 천왕봉에서의 일출은 입체적이랄까?. 그런 느낌을 가졌다.
18미리 광각렌즈로 보이는 하늘은 욕심을 더 내어 좀 더 좀 더 와이드앵글로 가고 싶게 한다. 실상을 작은 필름 위에 여러 번 기록했다.
해의 존재감이 약해지면서 상봉에서의 일출맞이는 파시처럼 종료되었다.
정상에서 환호하던 이들은 저마다의 행선지로 향하고, 우리 다섯 명은 이제 여행의 종착지로 간다. 중봉을 거쳐 써리봉을 향한다. 쉬는 봉우리마다에서 상봉을 조망해 보면 그 위엄이 군황의 자태를 연상시키다. 왜 천왕봉이라 명명했는지 알 수 있다.
군왕과 신하의 조화로운 모습으로 오랜 몇 겁을 지나온 여러 봉들이 있고 그 중심에 상봉이 있다. 위엄과 권위의 아우라가 있다. 침묵으로 조용히 말하는 듯하다. 내려가는 도중에 위로 쳐다보는 앵글도 좋았다.
노고단에서 동쪽으로 능선을 거치면서 조망 좋은 곳에서는 능선이 보였다. 불경스럽게도 친구처럼 능선아, 능선아를 불렀다. 그것은 호명이 아닌 경탄이었다. 하늘과 산이 만나는 실제적인 경이로움이었고, 산란한 빛이 원거리의 미립자들과 함께 하는 몽환적인 그림에 대한 헌사였다.
친구는 계곡에 빠지고 그리하여 안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래의 골짜기보다 하늘에 닿은 중첩된 선에 매료되었다. 하늘이기도 하고 구름이기도 하고 산의 흐름이기도 한 어슴푸레하게 경계가 지어진 능선들~~ 그 능선과 계곡은 컸다. 누구 말대로 "산은 지리산이다"를 여실하게 공감한다. 모두를 다 포용한 산. 그리하여 상처받은 이들에게 영원한 인식을 주는 산... 그곳에서 茫然히 능선을 바라보았다. 미물의 존재감은 깃털보다 가벼웠다.
나는 능선이 보이면 셔터를 눌렀다. 슬라이드 필름을 많이 소비했다. 능선에서는 누르게 만들었다. 조망점은 능선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운해와 숨바꼭질하면서 선들의 겹침은 시시각각으로 변했고, 단색의 한 모습이 아니어서 더 좋았었다. 동쪽의 천왕봉을 지나고 서쪽의 천왕봉을 보면서 하늘과 산에서 멀어지고 사람의 마을과 가까워진다. 저 멀리 노고단과 반야봉과 능선이 운무 속에서 아득해진다. 격하게 숨을 헐떡이고 정점에 오르려 하는 것은 능선을 보려 함이고 이는 그곳에서 흥분된 정적 고요를 느끼기 위한 것이리, 봉우리마다에서 곰탕뷰 없이 그곳에서 남녘 능선들과 지리능선들을 잘 감상했다. 최고의 기억과 기록 도구는 가슴과 머리이지만 이는 신이 나서 이야기할 때마다 달라지는 단점을 갖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필름에 기대였다.
나는 지리산의 느낌을 묘사하는데 적합한 말을 모른다. 다만 그곳에서 저 멀리의 산군들을 호명하며 점층 되는 지리에서의 감흥을 대체하려 한다. 졸필은 진부한 설명보다는 영탄조가 더 설명적일 것이다.
능선아!
능선아!
능선아!
누구의 표현대로 장쾌한 지리산 계곡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아침이면 아무 일 없이 평온하듯이, 일상으로 돌아온 나 또한 아침의 평정을 견지하지만 밤이면 그곳 지리의 바람이 되어 계곡 깊은 곳에서부터 저 먼 능선의 여러 곳을 지난다. 열병이 되면 안 될 텐데 하면서 다시 여름이 오면 그 열병에 감염되고 싶다. 그곳에서 바람이 되어 또 부르고 싶다.
지리산아!
능선아!
능선아!
2003.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