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술이부작

관음전-하나뿐인 건축

by 술이부작

관음전-하나뿐인 건축


1월 11일

1월은 아주 추웠다. 도로와 대지의 경사를 재는 현장에서 손이 꽁꽁 얼었다.


3월 10일

개토식이 있었다. 전날 폭설이 내렸는데 천수경을 암송하는 신자들의 독경소리가 구성지고 맑다.

현장 소장은 집이 지어질 곳 중앙 부위에 드릴로 구멍을 내고, 주지 스님은 소금과 막걸리를 대지 주변에 뿌렸다. 행사 후에 공양간은 저잣거리처럼 시끌벅적하다. 절에서는 행사가 끝나면 고사떡과 과일을 싸서 참석자들한테 나눠 주었다.


8월 2일

불기 2554년 8월 2일 관음전 상량법회가 2층 콘크리트 박스 안에서 열렸다. 찜통더위 속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소금, 막걸리, 명태머리를 건물 주변에 뿌리고 던졌다.

상량문에는 날짜와 주지 스님 이름만 적었다. 전통의식에 현대식 상량문을 기록했다.




4월 30일

설계한 건물로 그 주변의 풍경이 나빠지지 않아야 한다.

안 풀리며 갑갑한 상태, 그때도 사랑하라.

잘 풀리는 것이 좋은 게 아니다. 안 풀리는 게 안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진로도 없고 퇴로도 없는 답답한 상태, 그때의 생각도 알을 품듯이 품어라.

머릿속은 우유가 부단하고,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 보라


4월 26일

프로그램이 좋은 것은 스님 덕분이고, 설계가 미흡한 것 내 덕분(?)이다.

스님은 예측가능하고 나는 예측이 불가하다.

그들 덕분에 자신의 내적 세계를 확장할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하자.


스님... 사회적 욕망이 사라진 그런 이들이 사는 집,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그들이 가지는 집에 대한 관심은 애착과 집착의 중간쯤? 속가의 아파트를 모델로 하는 안을 선호한다. 정갈한 고무신같은 관념은 내 생각일뿐.


4월 22일

건축허가 시점에 구청에서는 6.2 지방 선거와 연관되어 집단 민원이 예상되므로 5월 말에 착공신고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소방동의는 초법적으로 단독감지기와 방화유리를 추가로 강제한다.

근린생활시설은 대지 경계선에서 이격 거리가 0m, 종교 시설은 이격 거리가 1m, 도심지에서 건물은 더 차지하려 하고 법과 이웃들은 더 못 차지 하게 하려 한다. 도시에서 적정한 양보는 없고 법규대로 최소한만 띄운다.




이 세상에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건축, 왜 내가 설계자로 선택되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보고 베낄 게 없어 막막하지만. 참고할 원전이 빈 머리밖에 없으니 오히려 다행이다. 내가 아는 것으로만 만든다.

승과 속, 고전과 현대, 기존과 신생, 보이드와 채워짐, 불편함과 편리함, 법문과 식탐, 익숙함과 낯섦.


이상한 집과 이상하지 않은 집을 만든다.

두 개의 지붕이 이상하다. 2층과 4층 사이에 끼인 유리는 이상하다.

경사진 벽돌집 옆에 두 개의 경사지붕이 있다.

두 개는 두 공간을 암시한다. 개별시대의 아까렝가 집이 존치하고, 공공공간이 하나는 채워져 있고 하나는 비워져 있다.



이곳에 이르려면 화곡터널 옆의 구릉지 길을 통해 도시화를 열망하며 숨 가쁘게 달려온 징표들이 적나라하게 나열된 우리 시대, 우리 사회를 관통해야 한다. 실재하는 친근한 우리 환경, 토건국가로 치달아온 영욕들이 고스란한 곳의 중간쯤에 신도들이 위무받는 절이 있다..

키 작은 집들에는 부동산, 미용실, 정육점등이 들어 있고 키 큰 건물에는 원룸, 투룸이 있고, 더 큰 건물은 아파트로 되어 있다. 있는 그대로의 것은 아름답지 않고 나쁘지도 않고, 살갑고, 혼란스럽고, 세속적인 도시의 풍경들이다.

새 건물의 홀에서 이런 풍경은 보여 주어야 하는지 보여 주지 말아야 하는지 생각했고, 보여 주되 보여 주지 말자고 생각했다. 각 층의 홀에서 창들은 그래서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

혼돈을 응시하는 신도와 혼돈을 외면하는 신도가 건축 공간에게 성찰을 강요받는다.


기존의 건축을 존중하면서 어떤 질서를 만드는가?  

기존 건물보다 높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1층은 홀과 주차장, 2층은 공양간, 3층은 요사채, 4층은 관음전으로 각 층고는 2850 미리, 무량판 구조에 250 미리 스라브, 400미리 와이드 보를 적용했다.

관음전의 천정고는 경사지붕을 이용해 크게 높였다.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 벽면으로 흔치 않은 디테일을 만들었다.

덧없음을 표상하는 콘크리트벽은 강고한데 색이 곧 공이 되는 풍경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외벽엔 큰 나무의 그림자가 비추이고, 내벽엔 일렁이는 잔 물결이 비추이면 좋겠다.

4월 2일

대지의 바로 옆에 전통적인 목조의 대웅전과, 붉은 벽돌의 양옥집이 있었다. 중요한 요소였다.

눈 내린 다음 날, 나는 듣기만 했다. 아는 게 없는 나는 아는 척하지 않았고 그들의 생활과 종교를 물어보지 않았다. 프로그램은 빈틈없이 준비되어 있어 나는 공용, 생활, 수행, 포교의 공간을 조직화하는데 신경 썼다. 그리고 몇 가지를 제안했다.

지하에 법당? 부처님 위에 다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으니 안 된다.

마당과 오픈, 비를 맞고, 바람을 느끼게 하자, 오케이,

노출 콘크리트, 적벽돌이 좋다. 대략 난감했다. 적벽돌과 노출콘크리트 건물 두 개의 대안을 만들고 설명했다. 노출로 갔다.


빨래를 삶기 위해 가스레인지가 있어야 하고, 주방은 습식과 건식이 다 있어야 한다. 하이힐의 딱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하므로 실내에서 신을 벗도록 해 달라.

관음전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게 해 달라.


지대방은 참선 수행을 하는 방도 세속의 방도 아니다. 지대방에 우리네 일상의 모습이 없는 것도 아니다. 등을 대고 눕지 않고 떠들지 않고, 코 골지 않는다. 지대방이 만들어졌는데 이런 방들이 나는 좋다.

격자 창문의 살과 그림자, 석양에 낮은 각도에 깊은 음영이 절제와 금욕의 이미지를 줄 것이다.

판 벽의 울림, 흙벽의 포근함, 한지의 사용 등은 거론만 했다. 섬세한 스님들이 빈 공간을 채워 나갈 것이다.

연출한 종교공간, 계산된 위엄, 압도하는 초월의 힘은 생각하지 않았다..


실용과 자본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장에서 정 많은 스님들이 어떻게 골치 아픈 문제들을 잘 대처해 나갈지 걱정스러웠는데 공사는 잘 진행되어 마무리가 한창이다.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할 것인가? 담장은 어떻게 어색한 조화를 이룰까? 앞으로도 할 일은 많은데 절에선 돈이 모자란다.

담장은 문양 콘크리트에 기와를 씌우고, 일주문은 전통양식에 콘크리트 기둥으로 한다고 한다. 양복에 갓 쓴 형국이라고 반대하며, 현대식으로 제안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닌가? 아닌 것 같다.

성과 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성직자들과 하나뿐인 건축을 위해 잠깐 일했다. 신도들이 침묵으로 말하고, 나도 침묵으로 일했다. 나의 건축은 말이 많은 침묵이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건축이 내게는 어렵고도 멀다. 하나뿐인 건축에 대한 기억들도 희미해져 간다.


2010.9.2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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