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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 한바구니 May 02. 2023

그녀의 분노, 무엇이 문제인가

[용기] 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간

이전 직장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새 직장으로 출근한 첫 주, 새 식구들과 인사를 하고 지낸 지 얼마 안 되어 우리 사무실은 새로 지어진 건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 팀은 꾸려진 지 얼마 안 되어 팀장 한 명에, 나와 여직원 이렇게 셋이서 이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팀장은 본인의 이삿짐을 재빠르게 꾸려 먼저 자리를 떴고, 나와 여직원은 자리에 남아 자기 짐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짐이 적었기에 빠르게 이사 준비를 마치고 마침 개인 짐을 꾸리고 있던 여직원의 이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와 드리겠다'며 여직원의 짐 박스를 들어 올리려 했다.   

   

"건들지 말아요!" 여직원은 느닷없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나는 너무 놀라 짐에서 얼른 손을 떼었다.     

"이 짐도 옮기려 하신 거 아닌가요? 저는 그저 도와드리려고..."     

"내가 할 거예요. 건들지 말라요."     

"네? 아, 네..."

     

무척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첫 주부터 동료와 부딪힐 수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애써 태연한 척 미소를 지어준 후 나는 내 짐과 나머지 부서의 짐을 가지고 카트에 실었다. 여직원은 분명 힘겨워 보였지만 혼자서 꿋꿋이 짐을 쌌고, 결국 우리 부서가 제일 늦게 새 집으로 이사를 마쳤다. 팀장은 내게 왜 이리 늦었냐며 추궁을 했고 나는 별다른 변명을 하지 않고 적당히 둘러대고 상황을 종료 지었다.     

 

© geralt, 출처 Pixabay


도대체 직원과 나 사이의 대화에 무엇이 문제였을까? 

한 참의 시간이 지나 그 여직원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나서야 나는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돌아보니 대략 세 가지 정도가 문제가 된 것 같았다.     


먼저 성급한 관계 개선의 시도이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빨리 친해지기 위해 먼저 대화를 걸고 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질문과 대답을 해 가며 소위 말하는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는 것을 즐긴다. 대화가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대화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먼저 다가가 도움을 주는 식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 빠르게 친해지곤 했다. 그런데 이 직원은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타고난 성격 탓에 타인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경우였다.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너무 인위적으로 성급하게 접근한 게 문제였다. 이 여직원은 본인이 친해졌다고 판단이 서면 그때 상대방에게 자신이 먼저 대화를 걸고 친하게 지낸다고 했다.      


또 한 가지는 상대방의 의사를 먼저 묻지 않고 일을 진행한 것이다. 

나는 그 직원과의 인간관계를 맺을 때 상식적인 방법으로 접근을 했고 그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그 여직원이 즉시 알려준 것이다. 팀장에 의하면 그 직원은 자신의 소유물을 남이 허락도 받지 않고 건드리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고 했다. 심지어 자신만의 영역이라고 여기는 곳에 허가 없이 접근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여직원에게 다가가거나 물건에 손을 댈 때 먼저 묻거나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을 '제대로' 배려하고 존중하려는 마음이 부족했다. 

상사의 언행이 하급 직원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일정 부분 용납이 될 수 있는 지배 구조 사회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보니, 상급자로서의 하급자를 향한 대화방식에 대해 아무런 필터링 없이 적용했던 것 같다. 더구나 상대방을 배려했다고 판단했던 그 배려는 내 중심의 배려였을 뿐, 상대방이 원하는 배려는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좋아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을 리가 없다. 나는 가끔 이런 실수를 저지르곤 했는데, 바로 아내의 생일 선물을 할 때였다. 내가 보기에 분명 좋아할 것 같아서 웃으며 내민 선물에 집사람은 시큰둥하곤 했다. 그러고는 '내가 원하는 것을 선물해 달라'라고 했다. 일방통행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나만의 인간관계론을 재정립하게 되었다. 나이가 대화의 키가 될 수 없고, 상사의 일방적인 대화가 직원에게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소통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베이비 부머의 '나를 따르라'식의 리더십은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무엇이 잘 못 된 것일까? '소통을 해석하는 방식'이 잘 못 된 것이다. 직원은 '부하'가 아닌 '동료'인데 7080 세대의 어른들은 여전히 젊은 세대를 소통의 상대가 아닌 자신의 말을 무조건 듣고 따라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세대에 순응하고 '일방적인' 소통을 감내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 자신도 그러한 소통 방식에 자연스레 동화되어 갔고, 안타깝게도 내가 동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아니,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이 방식을 10살이나 젊은 동료에게 아무 생각 없이 적용을 했다니...     




외부에서 소통 전문강사를 초청하여 소통에 대해 배웠다. 강사는 말했다. 

'젊은 직원들에 대해 스스로 선을 긋고 대하지 말아야 한다. 젊은 세대라고 어른과의 대화를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윗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다만 소통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라. 생각보다 훨씬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3년만 차이나도 꼰대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사이에도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다고 한다. 그만큼 세대 간의 공유문화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인터넷을 뒤져 젊은 세대의 언어를 검색해 보고 한두 개라도 익혀보라. 의외로 재미있게 다가오는 표현들이 많을 것이다.      


노년에 우리 아들, 딸에게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에 은근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이들의 오늘 이야기 주제는 '수성의 마녀'이다. 최근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최신판이 '수성의 마녀'라는 시리즈로 케이블 방송에서 연재 중이다. 다행히 내가 젊은 시절에도 건담 시리즈는 한창 인기가 있어서 아이들 대화 중간중간에 끼어들 수 있었다. 엄마는 휴대폰에 집중하느라 아이들의 이야기를 못 알아듣는 것 같다. 불쌍한 어른이다. 나중에 아이들의 대화를 통역해 주어야 하겠다.  

   

앞으로도 아이들 대화 소재들의 한 켠에 아빠의 자리가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도태되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응원과 격려의 파이팅을 외쳐본다. 가끔 우리 아이들도 이런 아빠의 노력을 칭찬해 주기를 바란다면 터무니없는 욕심일까?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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