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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 한바구니 May 09. 2023

최악의 교사

사람이 훗날 남기는 것

 

우연한 기회에 모교 관련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2022년 과학점핑학교 운영성과 평가 최우수 학교로 선정되었다는 기사였다. 과학점핑학교란,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학습, 정서, 심리 등 과학 학습 곤란을 겪는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와 학습동기를 높이고 도전의식을 함양하여 과학적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맞춤형 학습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학습 결손을 회복 및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과학점핑학교에 선정이 되면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표창을 받게 되니 학교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모교 관련 여러 가지 훈훈한 기사가 몇 개 더 뉴스거리로 올라와 있어 해당 기사를 탐독하며 기분 좋게 기사를 읽어내려가던 중 씁쓸한 기사들을 접했다. [어느 학교법인 이사장의 도 넘은 갑질], [사립고에서 아동학대 의혹... 교장, 교감이 신고당해] 등등... 최근 1~2년 사이에 올라온 모교 관련 기사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당혹스러운 마음에 해당 기사를 클릭한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고를 당한 학교장 J 씨와  교감 K 씨. 그중 학교장 J 씨. 고교생활에 대한 암울한 기억을 남겨준 장본인이자 '교사'라는 명칭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 바로 그 사람이었다.

     



90년대 초반 나는 대전에 있는 한 남자 고등학교의 학생이었고, 그 사람은 생물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똘마니'라는 별명을 가진 교사가 3명 있었는데, 우리는 별명을 줄여 똘1, 똘2, 똘3으로 명명했다. 선배들로부터 이어져 온 이 '명성'에 맞게 그 사람들의 악명은 우리 시대에서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중 단연 돋보였던 사람이 '똘2', 즉 생물 교사였다.  크게 두 가지로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하나는 기독교 학생들을 핍박하기로 유명하였고, 또 하나는 히스테리 성 폭력이었다.   

   

먼저 교회를 다닌다고 알려진 학생에게는 수업 도중 돌발적으로 지목하여 기독교를 욕하기도 하고 교회의 부당성에 대해 말을 하며 학생에게 모욕감을 주기도 했다. 성경 구절을 인용해 가며 모욕을 준 것으로 보아 이전에 교회 생활을 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하였다. 회자되는 소문에 의하면 학창 시절 교회를 다닐 때 좋아했던 여성에게서 퇴짜를 맞은 후 그 복수를 학생들에게 하고 있다는 '썰'도 있었다.      


문제는 두 번째. 히스테리에 가까운 학생 폭력이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고, 때로는 부모님의 묵인하에, 혹은 동료 교사의 묵인하게 체벌도 빈번히 이루어졌다. 오히려 어떤 학부모님은 '우리 아들 사람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라는 인사까지 건넬 정도였다고 하니 말 다 한 셈이다. 하지만 이 교사의 체벌은 체벌 수준을 넘어 말 그대로 '폭력'이라고 밖에 설명을 할 수 없었다.




생물 시간이 되면 반 친구들은 잔뜩 긴장을 하였다. 어느 친구는 생물 수업이 있는 날이면 바지 속에 체육복을 한 겹 더 입고 앉아 있는다. 어느 친구는 아예 허벅지나 무릎 쪽에 헝겊을 하나 덧대어 놓고 바지를 입는다. J 씨의 폭력에 대비하는 우리만의 궁여지책인 것이다.      

이윽고 생물교사가 들어오고 학생들은 얼굴이 굳어진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교사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이상하게 그 질문이 쉽지가 않아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답변을 하지 못한다. 맨 앞에서부터 시작된 질문 세례.    

  

"맨 앞의 너 몇 번이야?"

"3번이요."     

3번에게 질문을 한다. 3번은 답변을 못 한다. 일단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손을 든다.      

"13번", "23번", "33번", "43번"... 계속해서 질문에 답을 못 하면 이번엔 날짜를 묻는다.


"오늘 며칠이야?"

"7일이요"     

"7번", "17번", "27번", "37번", "47번"... 중간에 한 녀석이라도 대답을 하면 질문이 멈춘다. 다행이라고 여기는 순간,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지고, 질문에 답을 못 하게 되면 앞 번호들처럼 다시 책상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손을 들게 된다.  이렇게 하다 보면 공부를 잘하는 몇몇 친구만 빼고는 대부분 책상 위에 올라와 있다.  

    

드디어 '타작'의 시간이 돌아왔다. 선생의 손에 쥔 매에 의해 왼쪽 맨 앞에 앉은 아이부터 시작해서 5대씩 혹은 기분에 따라 10대씩 무릎이 작살나기 시작한다. 소리 내면 죽는다. 차라리 맨 앞에 맞은 아이가 양반이다.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기는커녕 매의 강도는 더욱 거세어진다. '그러게, 왜 틀렸냐고' 소리를 지르면서 더욱 세게 무릎을 내려친다.  어느 날은 남자들의 '그곳'을 때리기도 했다. 정력에 좋다고 하면서 말이다.    

  

갑작스러운 질문은 그나마 나았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즌이 돌아오면 교실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시험이 끝나고 난 다음 주 생물 시간, 우리는 체벌을 빙자한 폭력의 신세계를 체험할 수 있었다. 틀린 문제 수에 따라, 혹은 J 씨가 정한 기준에 따라 우리의 체벌 부위는 다양하게 헌납되었다. 손바닥, 종아리, 허벅지 등등...      


아동 체벌 장면 / 출처 : 영화 [4등]


어떨 때는 매가 누적이 되기도 했다. 그 선생이 정한 기준에 의해 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나중에는 매를 맞는 부위별로 매의 가치를 달리 매겨 맞기도 했다. 이를테면, 손바닥 5대는 종아리 1대, 종아리 5대는 허벅지 1대 등이다. 종아리 5대가 허벅지 1대로 줄었다고 좋아하면 안 된다. 종아리는 일반 매로 맞지만, 허벅지는 봉걸래 자루로 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봉걸래 자루로는 가급적이면 맞지 않는 것이 좋다. 이 사람은 봉걸레에 특화된 매질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리다가 화가 나면 마구잡이로 때리고, 때릴수록 탄력이 붙는지 강도가 세어졌다. 이쯤 되면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마치 광기가 어린 눈으로 학생을 쥐 잡듯이 패댔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어느 날도 평소와 같이 학생들을 쥐어 패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졸도를 한 것이다. 그다음 날 학부모가 학교에 들이닥쳐서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내가 복도를 걷고 있었는데 한쪽에서 훌쩍거리는 J 씨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립학교이다 보니 스승님도 함께 근무 중이셨는데, 마침 그 스승님께서 그 남자를 위로해 주시고 계셨다. 하지만 내겐 일말의 동정심이 생기지도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조차 히죽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유튜브에서 이 고등학교 교장으로 검색을 하면 위 기사의 제목으로 공영방송에서 올린 동영상 뉴스가 하나 있다. 하단의 댓글을 확인하면 안타깝게도 그 교사를 옹호하는 글들이 전혀 없다. 오히려 나처럼 암울했던 기억을 토로하는 글들이 간혹 보이기도 한다. 교장이 되기 직전까지 학생들을 때리기도 했고, 스승의 날이나 생일을 챙겨주지 않으면 온갖 진상 짓을 저질렀다는 내용들도 보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때 KBS에서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방송이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연예인들이 나와 학창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나 옛 스승님을 찾아서 손을 맞잡고 당시의 추억을 회고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떤 교사는 골칫거리 제자를 오히려 다독거리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는데, 당시 출연했던 연예인은 '선생님 덕에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면서 감사의 큰 절과 함께 스승님을 꼬옥 안아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런 교사를 한 명도 만나지 못하고 학창 시절을 마친 나는 마냥 부럽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 / 출처 : KBS [TV는 사랑을 싣고]


일생을 교육에 헌신하여 최고의 제자를 만들어 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수많은 학생들의 가슴에 고통을 안겨주고도 모자라 대접을 못 받았다며 몽니를 부리는 교사라니, 생각할수록 씁쓸하기만 하다.  훗날 제자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없을 것이다. 제자를 잘 키워 냈다고 보너스를 더 받으려 하는 교사도 없다. 요즘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적용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촌지나 선물을 받을 수도 없다. 하지만 제자가 손으로 삐뚤빼뚤 적어준 감사의 편지를 들어 보이며 '최고의 월급'이라고 자랑했다던 한 교사의 이야기는, 교사로서의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최고의 교사'라는 칭송을 얻지 못할지언정 '최악의 교사'라는 오명은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하지 않던가? 그 이름, 그리고 그 이름이 남긴 행적들은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언론이나 인터넷 세상 어딘가에서 주홍글씨처럼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무서운 사실을 상기하고 앞으로라도 올바른 직업의식을 가지고 참된 교육자로서 그 소임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데 과연 내 바람대로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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