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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 한바구니 Jun 14. 2023

비우는 연습

문제를 바라보는 자세

전날 음식을 잘 못 먹었는지 새벽에 두통이 심하였다. 웬만하면 그냥 잘만도

 한데 조금 지나자 더욱 지끈거리고 아파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새벽 잠시간을 거의 소진하였다. 피곤한데도 두통이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시간을 보니 아침 시간이 거의 다 되었기에 더 이상의 잠시간은 무의미할 것 같아 곧바로 아침 묵상을 시작하였다. 두통으로 인해 묵상도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대충 마무리하고 따뜻한 물을 한잔한 후 약간의 실내운동을 하였다. 두어 번의 트림이 나왔다. 그래도 몸은 쉽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손은 차갑고 머리는 윙윙거리듯 아팠고, 가슴은 답답했다.      


어제저녁에 무엇을 먹었나 생각해 보니 정월대보름을 맞아 나물을 먹었는데 나물들이 조금 질기다는 느낌을 받으며 꾸역꾸역 먹은 것 같았다. 본래 나물은 식이섬유가 아니던가? 소화에 무리가 될 리가 없을 텐데...     

생각해 보니 어제 아들의 미래 문제로 아내와 옥신각신 논쟁을 벌인 일이 생각났다. 아내와의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고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심란한 마음을 가진 채 잠을 청한 것이 화근이 된 것 같았다.     


잠시 후회가 밀려왔다. 평소에는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였으면서도 정작 실천력이 떨어지는 나 자신을 본다. 이론과 실천이 한결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평소처럼 밥을 올리고 라디오를 작게 틀고는 씻고 나왔다. 그 사이 아내도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체한 것 같아서 아침은 못 먹겠다'라고 했더니 '그럴 거면 밥은 왜 안쳤냐'라며 뾰로통해졌다. 미안한 마음에 어쭙잖은 핑계를 대고 옷을 입고 나오려는데 아내가 안아 달라고 했다. 고마웠다. 그냥 출근하게 되면 나도 온종일 기분이 안 좋았을 텐데 말이다. 나를 꼬옥 안아주는 아내의 따스한 숨결이 천천히 전해져 왔다.     


아침 한 끼는 자연스레 걸렀다. 상황을 봐서 점심도 가볍게 먹던지 아니면 속을 비울 생각이다. 일단 아침을 거르고 속을 비우니 편안하긴 하다. 반강제적 단식이긴 했지만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니 머리 아픈 증상이 완화된 느낌이 든다. 아내가 챙겨준 두통약도 한몫을 한 것 같다.     

 

머리가 아플 땐 그 원인을 피하거나 제거하는 게 상책이다. 체하면 한 끼를 거르거나 약을 먹거나 해서 문제를 해결하면 그만이다. 미련하게 스스로 해결해 보겠다고 버티다 보면 그 고통을 오래 간직한 채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직면한 문제에 답이 보이지 않으면 집착을 버리고 잠시 마음을 비우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다.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나름대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먼저 그 문제에서 잠시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주관이 개입되면 상황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고, 따라서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가급적이면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도록 하고 나의 관점에서 잠시 벗어나 문제를 공동으로 야기한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의외의 해결점을 찾아낼 수 있고 약간의 용기를 내 상대방과 그 문제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을 하다 보면 상대방도 호의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문제는 예상외로 쉽게 해결되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니 객관적 접근이 적잖이 효율적임을 보게 된다.     


다른 하나는 나를 괴롭히는 문제를 잠시 묻어 둔다. 그리고 다른 이슈에 집중한다. 자꾸 떠오르는 문제에 대해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다른 일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잊히게 되고 잠시 두통거리를 접어둘 수 있다. 이때 집중했던 다른 이슈가 해결이 된다. 이로 인해 새로운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이 에너지를 바탕으로 기존에 나를 괴롭게 했던 그 문제로 돌아간다. 그러면 조금 전 해결했던 그 경험이 이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른 분야에서 얻게 된 자신감이 이전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드라이브를 걸어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직면한 문제와 관련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가 현재 품고 있는 고민거리를 연계해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 이 방법은 의외로 좋은 해결책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동종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고정된 사고방식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발견하고 추출해 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방식을 적용하여 막혔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적이 있기 때문에 종종 이 방법을 적용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자기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있다. 하지만 나만의 방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 주변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 보자.  '내가 낸데' 하며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던 시대는 지났다. 검색 하나만으로도 방대한 자료를 뽑아낼 수 있는 빅데이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타인의 도움을 요청해야 할 시기가 있다. 일마다 골든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잠시 한 걸음 떨어져서 마음을 비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부담이 되면 비우면 되고 비우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고인 물은 썩고 흐르는 물은 생명을 공급한다.


비워야 할 때가 되면 비우자. 억지로 버티다 탈 나지 말고 소화제가 필요하면 주저 없이 소화제를 찾기 바란다. 급체에는 수지침이 제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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