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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 한바구니 Jun 08. 2023

주객이 전도된 삶

루틴에 대한 믿음

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담임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듣는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 기록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덧 주일 설교 말씀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매주 노트에 볼펜으로 말씀을 기록하다 보니 어느덧 내 글씨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이웃님들 중에 캘리그래피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성경이나 소설, 영어책을 필사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본의 아니게 그분들의 글씨에 관심이 가고 내 글씨와 비교도 되기 시작했다.   

   

비교가 문제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에 집중하라'는 문구를 되뇌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비교라는 녀석을 쉽게 떨쳐내기 힘들다. 글씨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차지하는 비중이 많이 줄었다지만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손으로 쓴 글씨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당장 중소규모 업체나 식당 등의 간판에 상당수의 캘리그래피 글씨가 걸려 있다.      

오늘도 노트를 펼치고 성경 본문, 제목, 내용 등을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늘따라 글씨가 각이 좀 잡히는 것 같다.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오늘따라 화장이 잘 먹는다든지, 주차가 잘 된다든지, 넥타이가 잘 매어지는 날. 심지어 고스톱에서 상대방이 싼 패를 내가 가지고 있고 연이어 판쓰리에 피박, 광박까지 되는 날. 오늘이 그런 날인가 보다.      


글씨가 잘 써지기 시작하자 글씨 쓰기에 좀 더 집중하기 시작했고 써 가는 글씨 자체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30분을 적고 나니 목사님 설교가 끝났다. 한쪽이 넘게 적어 내려간 글씨는 나름 질서와 균형이 잘 잡혔다.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한 중요 구절도 잘 적었다.   

   

설교가 끝이 났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 건지 모르겠다. 설교 문장은 잘 받아 적었는데 말씀의 진정한 내용을 내 가슴으로 받아내지 못한 것이다. 하드웨어는 갖추었는데 소프트웨어가 비어진 느낌.      




책을 읽을 때 줄을 열심히 긋고 중요한 문장이라고 열심히 표기했는데, 막상 다 읽고 나니 정작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가 있다. 책을 읽는 이유는 그 책을 통해 저자의 통찰력을 읽거나 저자의 메시지를 깨닫고 내 삶에 적용을 하기 위한 것인데, 멋진 문장을 기억하기 위해 형광펜으로 별표 5개 표기하고 몽블랑 펜으로 물결무늬 밑줄을 쫘악 긋고는 주제 파악도 못한 채 뿌듯한 감정만 한가득 가지고 독서를 마무리하기도 한다. 마치 학교 교과서에서 중요 문장을 색 펜으로 표시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던 나머지 수업이 끝나고 나면 선생님께서 어떤 내용을 강조하셨는지 놓쳐버렸을 때가 있는 것과 같다.    

  

글씨 쓰기에 신경을 쓰다가 말씀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 한 오늘.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날이었다. 설교 말씀 들으러 갔다가 글씨만 잘 쓰고 온 날이라니... 속 빈 강정과 같은 날이다. 내가 내 기분에 취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린다면 너무나 허무할 것이다.      


화장은 잘 먹었고 옷 스타일도 좋은데 정작 오늘 면접을 망쳤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변요리도 맛있고 서비스도 좋았는데 본 요리가 상하고 맛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객보다는 주가 확실해야 한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되겠다. 참으로 시간 아깝고 입맛만 버리는 날이 될 것이다.      




내가 지금 임하고 있는 일에 대한 주와 객을 분명하게 분리하고 객의 화려함에 미혹당하지 말 것이며, 일의 핵심을 일관성 있게 잡아가야 할 것이다. 속이 비고 겉만 화려한 것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다. 겉이 남루해도 보석은 보석이고, 쭉정이와 섞여 있다고 해도 알곡은 알곡이다.   

   

나의 알곡, 나의 보석을 찾았으면 끝까지 잃지 말고 가야 한다. 나의 보석을 남에게 줘버리고 모조품만 챙겨 오는 불상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주와 객을 구분하고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낼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 사색과 반성, 거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내 삶의 주를 진단하고 발견하며, 핵심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기 계발의 효율성을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 실천을 통해 우리는 분명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루틴을 이길 장사는 없다. 루틴의 힘을 믿어보자.    

 

주객이 전도된 삶은 오늘까지만 하는 걸로 하자. 


오늘보다 나은 내일 /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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