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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 한바구니 Nov 27. 2023

내면의 아이 사랑하기

나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연습


창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어린 시절부터 샤프한 머리와 뛰어난 달변 기술로 인해 남자친구와 여자친구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고 따라서 모임의 주제 설정이나 MT를 떠날 때도 보통 이 친구가 리더를 맡아 계획을 짜거나 일정을 꾸리곤 했다. 


이러한 능력은 그가 대학에 갔을 때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바로 미팅이나 소개팅에서!

당시 나는 이 친구와 함께 대학을 다녔는데, 이 친구는 대학생활 내내 곁에 여자친구가 없던 적이 없었고, 내가 자취하던 집에 종종 여자친구를 데려오곤 했다. 나는 이 녀석과 그 여자친구에게 라면을 끓여서 참기름 한 방울을 띄워 대접해 주곤 했다. 라면에 진심이었던 나는 물의 양과 불 끄는 시간을 계량화하였기에 라면을 끓일 때마다 실패를 한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녀석과 여자친구는 나보다는 라면을 먹기 위해 우리 집에 놀러 온 것 같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변변한 여사친(여자사람 친구)도 없었던 나는 내 친구를 통해 여자들의 연애 방식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는데, 연애 경험이 없던 내 눈에도 참 다양한 여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그녀들의 이별 방식에 있어서는 크게 세 가지 정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매달리는 형. 

때가 되어 헤어질 시기가 돌아오면 어떤 여자들은 내 친구에게 울며불며 매달렸다. 먼저 사과부터 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주면 고치겠다며 이별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그래도 이 친구가 뜻을 바꾸지 않으면 무릎도 꿇고 집에서도 기다리고 하면서 마음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이 친구 놈이 태도를 굽히지 않자, 온갖 악담과 저주를 퍼붓고 떠나갔다. 


두 번째, 먼저 이별 선언하는 형.

때가 되어 역시 헤어질 시기가 돌아오려 하면, 본인이 먼저 이별 선언을 해 버린다. 이 친구가 헤어지기 전에 이유나 들어보자 물어보면, '네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던지, '키가 작아서'라던지, '배가 나와서' 등 주로 외모를 이별의 근거로 들었다. 


마지막으로 쿨한(척하는) 형.

주로 합의로 헤어지는 유형으로, 남자가 이별의 뜻을 비추면, 기다렸다는 듯이 오케이 해 버린다. 

'마침 나도 너에게 말하려 했는데 잘 되었네. 잘 가라.' 그리고 집에 가서 펑펑 울어버렸다. 


© kj2018, 출처 Unsplash


이렇게 써 버리면 내 친구가 무슨 카사노바 정도 되는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나 여자를 많이 만났으면 이별하는 유형까지 다 파악하느냐면서 말이다. 사실 이 친구가 항상 이별 선언을 먼저 한 것은 아니다. 본인이 여자에게 차인 적도 많다. 


친한 친구랑 교제하던 여자의 마음을 훔쳐 사귀다가 그 여자에게 다시 차인 사례도 있다. 눈이 크고 얼굴이 귀여웠던 그 여자애는 첫 번째 남자랑 고교 시절 열렬히 사귀다가 이 녀석에게 마음을 주어 또 대학교 때까지 열렬히 사랑했다. 그러던 중 이 여자애가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유학을 떠나면서 내 친구를 찼다. 내 친구는 눈물을 파도 삼아 여자애에게 처절하게 매달렸다. 그 여자애 집까지 몇 번을 찾아가서 마음을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고 결국 떠나 버렸다. 그리고 중국 유학행 비행기에서 한 남자랑 눈이 맞아 유학지에서 열렬히 사랑을 한 후 한국으로 돌아올 때 그 남자를 차버리고 홀로 유유히 귀국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분명 존재한다.


이 친구의 가장 불쌍했던 경험은 따로 있다. 

보통 이 녀석과 사귀던 여자친구들은 외모가 준수했다. 보통 이상의 여성과 교제를 했기에 지나가면 다른 남자들의 시선이 수시로 꽂히곤 했다. 그런데 딱 한 번 그간의 기준과 맞지 않은 여성분을 내 자취 집에 데려왔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키가 작았고, 외모도 평소의 그 녀석이 선호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 녀석은 귀엽거나, 섹시하거나, 귀엽고 섹시한 여성을 선호했다. 그런데 이 분은... 그랬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외적인 문제가 아닌 심리적인 면이 많이 작용했다. 첫 모습부터 나를 경계하는 모습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웃는 표정이 너무 가식적으로 보였고, 이 친구의 말에 보이는 반응도 너무 과하리만큼 컸다. 참다못해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조용히 물었다. '도대체 저분이 왜 마음에 드냐'라고. 이 친구가 답했다. '자신의 말에 이렇게 반응을 잘해주는 여자는 처음 만났다'라고.


당시 친구는 대학 졸업 후 다시 의대를 준비 중이었다. 전국 모의고사에서 상위 3% 이내에 들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는데, 첫 번째 지원에서 안타깝게 떨어졌다. 이 무렵 친구는 그녀와 교제를 시작했다. 그녀의 첫째 언니의 남편도 의사, 둘째 언니의 남편도 의사였기에, 본인의 미래 남자도 의사이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이 친구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시 한번 의대 도전을 했고 두 번째도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이 여성분은 친구에 대한 신뢰를 멈추지 않았다. 내 친구는 그런 그녀를 더없이 사랑했고, 그 믿음에 보답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도 어느덧 그녀에 대한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 번째 탈락 후, 그녀는 두 말없이 이별선언을 했다. 내 친구는 중국 유학녀 여자친구에게 매달렸던 것보다 더 열정적으로 매달렸다. 무릎 꿇고 빌기도 하고, 집 앞에 수도 없이 찾아가 매달리기도 했으며, 그녀의 직장 입구에서도 기다렸다가 만나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 떠난 그녀는 끝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내 친구는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했고, 식음을 전폐하고 며칠째 누워있기도 했다. 친구 어머니는 이 녀석이 걱정되어 나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좀 해 보라고 난리를 치셨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왠지 이 녀석이 그동안 만나왔던 여성들에게 했던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 같기도 했고,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끝내 내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운 것에 대한 보응을 받는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성 간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그저 겉으로만 그럴싸해 보일 뿐이다. 세상 쿨하다고 자부하던 친구 녀석들의 입에서도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하는 녀석은 한 번도 없었다. 


잘 배운 성인들의 이별은 조금 더 신사적이고 매너 있어 보이지만, 그 속은 정말 쿨한 지 알 수가 없다. 한 녀석은 이성과 헤어진 후, 그동안 여성에게 주었던 선물을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쪼잔해 보이는 행태도 서슴지 않았다. 친구들이 소인배라고 나무랐더니, '대인배인 척하는 것보다 실속이 났다.'라며 우리들의 말을 무시했다. 

젊은 시절 화려한 연애경력을 자랑하던 그 친구는 지금까지 '나는 솔로'를 찍고 있다. 그때 그 이별의 충격 이후 좀처럼 여성을 만나지 않던 그 친구는 혼기를 넘기자 스스로 마음을 접은 것 같다. 가끔 말로는 이성을 만나려 한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사실 이 친구는 누군가와 이별하는 것을 무척 두려워했던 것 같다. 독자로 자란 이 친구는 아버지의 직장 일로 인해 아버지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고, 그 까닭에 집에는 엄마와 단둘이 지내곤 했다. 친구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어릴 적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면 저녁때까지 가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었고, 끝내 놀러 온 친구가 울고 난 후에야 어쩔 수 없이 본인도 울면서 돌려보내 주곤 했다고 한다. 친구는 사랑이 고팠던 것 같다. 누군가의 등을 먼저 보는 것을 못 견뎌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게서 받지 못했던 사랑을 밖에서 채우려 했었지만, 그 사랑의 양을 다 채우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성인이 되어서는 늘 혼자 지내는 것을 힘들어했었다. 항상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어야 했고, 여자친구가 없을 때에는 다른 친구들을 불러서라도 무언가를 하곤 했던 것 같다. 


아마 이 친구의 나면 속에는 '아빠의 사랑이 고픈 아이'가 살고 있을 것이다. 어릴 때 받아야 할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어른이 되는 바람에 여전히 사랑이 고픈 아이를 내면에 둔 채 밖에서 '보상으로서의 사랑'을 타인으로부터 채우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심리치료사인 샤리 보트윈(Shari Botwin)에 의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내면의 아이가 있다'라고 한다. 우리는 성장하고, 키가 커지고, 두뇌는 더욱 논리적으로 변하지만, 그렇다고 어린 시절의 생각이나 감정, 기억이 지워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 요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고 지지해 주는 보호자 덕에 행복하고 건강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내면의 아이와 조화를 이루고 그 아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린 시절 학대, 방임, 질병 등으로 부모를 잃거나, 빈곤 또는 이혼을 마주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지나야 했으며, 이로 인해 그러한 상황에서의 감정을 처리하고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했을 것이다. 보트윈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경험에 대한 기억의 영향이, 성인이 되었을 때  무언가를 수월하게 선택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즉,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이 성인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성인이 된 후 어린 시절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내 안에 살고 있는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치유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내면 아이 치유' 혹은 '내면 아이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심리치료사 니키 낸스(N. Nance)가 2015년에 [상담학 백과사전]에 기고한 내용에 의하면, 내면아이 치료는 사람들이 유년기 시절에 해결하지 못한 이슈들(unresolved issues)로 인해 성인기에 정서적 고통을 겪게 된다는 대전제를 중심으로 한다. 따라서 내면아이 치료의 핵심은 성인이 된 내담자가 자신의 유년기를 깊이 회고하면서 외상적 사건(traumatic events)을 탐색하고, 이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상처 입게 된 어린아이로서의 자아와 다시 대면하며, 그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는 법을 알고 있는 성인으로서 내면 아이가 해결하지 못했던 이슈를 해결해 주는 데 있다.  [The SAGE encyclopedia of theory in counseling and psychotherapy (pp. 537-539)]  


이러한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성인이 된 자신이 치유하고 사랑하기 위한 운동들이 온라인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Times》지에 의하면, 최근 SNS 중 하나인 '틱톡'에서는 '내면아이치유'나 '내면아이사랑'이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영상의 뷰가 십억 단위를 넘어가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본인들의 치유 과정을 공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내면의 아이를 만나서 치유하는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심리치료사 보트윈은 '내면의 아이를 치유하는 시기에 늦은 시기는 없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시작하라고 한다. "상처받고, 보호받지 못하거나, 이용당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마주했을 때 얻는 혜택은, 성인으로서의 삶을 훨씬 더 가치 있고 훨씬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임을 알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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