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폐쇄공포증이 없다는 것

by 따뜻한 말 한마디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 중에는
터널을 지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장소 자체보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감각이
몸을 먼저 긴장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다르다.
폐쇄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다.
운전도 할 수 있고, 터널도 큰 부담 없이 지난다.
러시아워의 교통 체증이 버겁게 느껴질 때는 있지만,
공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사실은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하게 된다.

공황장애가 있음에도
내 일상의 반경은 아직 꽤 넓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다닐 수 있다.

비행기나 열차 안에서도 답답함에 휘둘리지 않는다.
지난 11월,

아무런 예기불안 없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도 시간이 나면

하루 이틀 짬을 내어
어디든 다녀오곤 했다.
그 시간이 나를 다시 버티게 해줬다는 걸
지금은 더 분명히 안다.


폐쇄된 공간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진다.
차 안에서도, 대중교통 안에서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그만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이 많아진다.


집에만 머무르기보다
밖으로 나가 몸이 다시 익숙해지도록 돕는 것.
그 선택이 아직 가능한 상태라는 점이
지금의 나에게는 꽤 중요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방은 아주 작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에서
나는 공황을 겪지 않고,
조금 더 괜찮아지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순간을,
오늘은 한 번 감사해본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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