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마음이 크게 무너진 시기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나도 그런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공황장애, 그리고 그와 함께 찾아온 우울증.
한때는 중증 환자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래도 적절한 치료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
이 사실은 요즘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매일 같은 시간, 아파트를 천천히 산책하며
익숙한 풍경을 무사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 평범한 장면이 나에게는 위안이 된다.
그리고 그 위안은 내 몸의 긴장을 조금씩 풀어준다.
내가 보고, 느끼고, 반응할 수 있다는 것.
아직 나에게 살아갈 힘이 남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그 사실에 감사한다.
상태가 가장 나빴던 시기에는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삶이 끝났으면 했다.
눈을 뜨고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일이
너무 괴롭고 버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늘은 또 어떤 풍경이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줄지,
그게 조금 궁금해졌다.
어쩌면 나는 이제
내 삶의 방향을 천천히 가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나답게 살 수 있을지를
서두르지 않고 살펴보면서.
이 모든 과정은
내가 여전히 감정을 느낄 수 있기에 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감정이 있다고 해서 뭐가 대수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은
내가 언제 편안해지는지,
언제 행복에 가까워지는지를
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에서야 나는
그 감정들을 조금씩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무리하지 않고, 밀어붙이지 않으면서.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요즘의 나에게 가장 분명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