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몇 개의 얼굴을 갖고 살아야 할까

by 따뜻한 말 한마디

나는 어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다.
기존 처방약이 다 떨어져 두 달 만에 병원을 찾았다.

요즘 들어 감각이 예민해지고 있다는 고민을 교수님께 말씀드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장 중요한 건 스트레스 요인에서 벗어난 시간 동안, ‘나다운 모습’을 지키는 거예요.”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은 다르다.
누군가에겐 업무, 누군가에겐 인간관계 전반이 스트레스일 수 있다.
나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지나치게 편중된 업무에 무너진 적도 있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상처를 받은 적도 많았다.
회사 동료, 친구, 전 연인.
가까워질수록 더 많이 다쳤다.


그래서 나는 퇴근을 하면 얼굴을 갈아 끼운다.
샤워를 하며 하루의 때를 씻어내고,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노래를 틀어놓는다.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고, 일본어 공부도 한다.
회사에서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내 모습이다.


비로소 나로 돌아오는 시간.
교수님은 이 변신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다.
스트레스를 나로 받아치지 않고,
그 상황에 맞는 자아로 흘려보내는 것.
그래야 본래의 자아가 다치지 않는다고.


그런데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은 여전히 버겁다.
매번 다른 상황에 맞춰 다른 얼굴을 꺼낸다는 건
내 안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조절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지쳐간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가슴이 답답해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다스리며 살아야 할까.
어딘가 소리치고 싶었지만,
나는 이성의 끈을 붙잡는다.


삶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다스려야 할 것들을 하나씩 돌아보며
내 안의 ‘나’를 지키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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