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프로토타입’에 대한 강요를 자주 느낀다.
“너 정도 연차면 저런 집은 대출 없이 살 수 있어야지.”
“그 회사 다니면 차는 그 정도는 타야 하는 거 아니야?”
“부모님 생각해서 결혼은 해야지. 너 나이도 적은 나이는 아니잖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나라는 참 정석을 중요시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수학의 정석’을 만든 민족답다고 할까.
해외 출장이 잦고, 여행도 자주 다니는 편이다.
그런 경험 속에서 내가 느낀 한국은, 정치적인 의미를 넘어서
“표준의 나라”, “형식이 강조되는 사회”라는 이미지에 가깝다.
그건 단지 인생 설계 같은 거창한 이야기에서만 느껴지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만 봐도 그렇다.
번화가를 걸어가면, 비슷한 가르마에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SNS 속 최신 트렌드는, 실제 거리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모두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데, 정작 스타일은 묘하게 닮아 있다.
회사 생활은 그 보수성과 정형화의 결정판이다.
보고를 위해선 반드시 따라야 하는 ‘양식’이 있다.
아무리 알찬 내용을 준비해도, 그 형식에 맞추는 순간
내 생각의 절반조차 담기 힘들다.
내용보다 틀이 먼저다.
사적인 영역에서도 다르지 않다.
연차가 쌓이면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기준이 생긴다.
누군가는 부동산으로 얼마를 벌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제네시스를 샀다고 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이 듣기 싫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자꾸만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 하고 돌아보게 된다.
물론 한국은 전쟁과 가난을 딛고 일어선 나라다.
국가 주도의 압축 성장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길을 따르도록 요구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안정과 번영을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도 선진국이다.
그렇다면 우리 삶도 조금은 숨 쉴 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다 같은 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 예외를 허용하는 사회야말로
진짜 여유가 있는 사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