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사랑의 편지'를 읽고....
묵묵히 밥상을 차리는 엄마
엄마는 정말 강한 사람입니다.
할아버지께 마음 상한 말을 들었던 날도
감기에 걸린 날도 아빠와 다투셨던 날도
엄마는 묵묵히 밥상을 차리셨습니다.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기분이 너무 나빠 밥상 따윈 쳐다보기도 싫은 날엔
한 번은 안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보여준 행동의 끝은 항상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두고 육아 휴직을 시작했습니다.
기꺼이 시작한 육아 휴직이었지만 어느 날에는
어떤 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과 마주했습니다.
그 순간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밥은 제대로 챙겨 먹냐는 질문에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때론 다 내팽개치고 도망가고 싶었음에도
엄마는 엄마의 일을 해냈었구나.'
이제 힘들 때마다 묵묵히 밥상을 차리던
엄마를 떠올려 보기로 합니다.
'오늘도 엄마는 엄마의 일을 해냈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심광식/초등교사
지하철역에 걸린 사랑의 편지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서일까. 엄마를 생각하면 늘 분주하게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손이 커서 다 먹지도 못할 양의 음식을 하느라 늘 바쁜 엄마가 싫었다.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하는데 딱 필요한 만큼만 하고 좀 여유롭게 할 수는 없는 걸까 싶었다. 제발 음식 좀 적당히 하라고 수없이 얘기해도 그대로였고, 지금도 여전하다.
친정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늘 반찬이 한가득 들려 있었고,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음식이 아까워서 엄마와 몇 년을 싸웠다. 그렇게 반복되는 싸움 끝에 이제는 그 양이 조금 줄었다.
때로는 생각한다. 가족끼리 성향이 너무 다르면 서로가 서로에게 힘든 존재가 되기도 한다고. 손이 큰 엄마와 손이 작은 딸. 외향적인 엄마와 내향적인 딸. 자신의 일이 더 중요한 엄마와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좋았던 딸. 이성적인 엄마와 감성적인 딸.
예전에는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저 성향이 달랐을 뿐이라고.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잠을 청하지만 엄마는 대청소를 하고 주방에서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며 풀어낸다. 어릴 때는 그걸 몰랐다. 그냥 엄마는 뭐가 저렇게 할 일이 늘 많을까 불평만 했다. 힘든 시간을 살아내기 위한 엄마만의 방법이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엄마는 일흔을 앞둔 지금도 여전히 바쁘다.몸을 사리지 않고 일하는 게 싫고 걱정되지만 그게 엄마가 사는 길이고 방법이니까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오늘도 엄마는 엄마의 일을 해내며 살고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