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옥죄게 만드는 말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너는 알아서 잘하니까 걱정 없지.' 였다. 어릴 때에는 그 말의 무게가 그렇게 무거운지 몰랐다. 그저 엄마가 나를 믿어주니까 내가 더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부모님께 쓴 편지에 앞으로 커서 꼭 효도하겠다는 말이 적혀 있다. 어른이 된 지금, 효도를 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효도를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 싫었으니까.
자식 된 도리로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자식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과 부모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차이가 있다. 자식이 셋이나 있고 막내인데도 엄마는 늘 나에게 의지했다. 믿을 만한 자식은 너밖에 없다고. 알아서 잘하는 자식은 너밖에 없다고. 엄마는 너 없으면 못 산다고.
그 말에 '나라도 잘해야지. 가진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우리 집이 잘 되게 해야지.' 생각했지만 점점 부담이 되어갔다.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는 동안 그 부담은 가슴이 꽉 막힌 듯 나를 힘들게 했다.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는 동안 궁금했다. 알아서 잘하는 게 과연 좋은 건가? 육체적, 경제적, 정서적 독립을 한 어른이라 해도 때론 부모의 응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알아서 잘하는 자식에겐 그런 응원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집안의 대소사는 늘 막내인 나에게 물어보고 해결하려고 하면서 정작 나의 어려움은 외면하는 듯한 모습이 한스러웠다.
늘 외로운 기분이었다. 결혼하고 새로 꾸린 가정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중에도 외로움은 불시에 찾아왔다. 하지만 그 외로움은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다. 남편이 그 마음을 알아주고 보듬어준다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고 부모와 깊은 대화를 해서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내가 학창 시절에 쓴 편지들을 고스란히 다 모아 두고 계신다. 나는 친정에 가서 눈에 보일 때마다 하나씩 찢어서 없앤다. 그때와 나는 다른데 부모님은 그 시절에 머물러 계신 것 같아서 마음이 힘들다. 좋은 마음으로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썼을 그때의 마음이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때론 자책하기도 하고, 때론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내린 결론은 하나. 그냥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것. 여러 과정을 통해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 뭘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두자는 것. 자책할 것도 부모님을 원망할 것도 없이 그냥 나의 성장 과정이 그랬다는 것.
감정적인 것들이 빠지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마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그렇게 털어내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성향이 다른 아이 둘을 키우면서 느낀 건 '너는 알아서 잘하니까'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는 것이다. 첫째는 굳이 잔소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잘하는데, 둘째는 아무리 잔소리해도 그때뿐이라 속 터지게 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첫째에게 '너는 알아서 잘하니까'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언젠가 첫째가 엄마는 내가 잘하다가 어쩌다 한번 잘못하면 '알아서 잘하는 애가 왜 그래?'라고 얘기하는데 너무 싫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이 내 평생을 옥죄어 온 말인데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다는 생각에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이렇게나 부족한 엄마인데 나의 엄마에게 완벽함을 기대했으니.... 모두가 부족한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또 조금은 가벼워진다. 그렇게 조금씩 덜고 또 덜어내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