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법
아빠 생신이라 일주일 전부터 친정에 가기로 얘기가 다 되어 있었다. 오늘이 그날이라 빈 통을 야무지게 챙기고 주말 동안 집을 비워야 하니 모든 쓰레기도 싹 비웠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에게서 온 연락. 내일 오면 안 되냐고. 비가 많이 온다는데 빗길 운전 위험하다면서. 그래서 빗길 운전 한두 번 해보냐고, 애들도 잔뜩 기대하고 있어서 그냥 간다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저녁 모임이 있으시다고 한다.
늘 그래왔다. 나를 위해주는 척, 걱정하는 척하는 말 뒤에 숨겨진 속내가 있다. 그냥 솔직하게 너희 가족이 오면 이것저것 챙겨줘야 하고 귀찮으니 내일 오라고 할 수는 없는 걸까.
왜 매번 나와의 약속을 가볍게 생각하는 걸까. 일주일 전에 약속 잡을 때 미리 얘기할 순 없었던 걸까.
'그럴 수도 있지'
(이럴 때 쓰는 말 맞겠지?)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엄마와 내 마음이 같을 수는 없고, 엄마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딸자식, 손녀들보다 본인의 개인적 모임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미리 잡은 약속보다 새로 생긴 일이 더 좋을 수 있다고.
애써 그렇게 말해보는 건, 나를 구원하기 위한 방법이다. 예전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엄마를 미워하기만 했다. 원망만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내 속만 썩어갔다. 언젠가부터 그런 것들이 참 부질없다 생각됐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그냥 웬만한 건 좀 넘어가는 게 낫지 않나 싶었던 거다.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는 집에 계시니까 우리 신경 쓰지 마시고 모임 잘 다녀오시고, 늦게 오셔도 된다고. 애들이 너무 기대하고 있었기에 그냥 가겠다고.
엄마는 엄마 방식대로, 나는 내 방식대로 그냥 그렇게 사는 거다. 서로 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엄마가 나를 이해해 주는 부분이 있듯이(있긴 하겠지?) 나도 엄마를 이해해 주며(많이) 산다.
쓰고 보니 글이 참 이기적이다. 엄마가 나를 이해해 주는 부분이 있긴 한 걸까 하는 마음에 나만 엄마를 많이 이해하는 것처럼 썼네.
그게 솔직한 속마음이라 그런가 보다. 좋은 딸인 것처럼, 착한 딸인 것처럼 거짓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그냥 내 마음 있는 그대로를 까보이고 싶다. 그래야 제대로 털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오늘도 나는 스스로를 구원한다.
구원했으니 친정에 가서는 분노를 표출하지 말자. 아이들과 함께 실컷 웃고 떠들며 놀다 와야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참 어렵다.
다들 그렇게 살겠지.
이유와 방식은 저마다 다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