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본 짧은 구절에 얼굴이 붉어진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잘 되라고 응원하는 건 내가 그보다 우월하다고, 앞서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문장이었습니다. 출처가 어디인지 찾아보려고 이곳저곳을 뒤져봤지만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현명한 일상 철학자가 적은 말이라고 생각해 뒀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이기적이기만 한 존재냐며 홀로 반박하고 싶었지만 근거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근거를 찾지 못하는 것을 보니 이 철학자는 깊고 어두운 진실을 턱! 하고 짚은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랄까요.
지금까지 주변의 누군가가 잘 되기를 바랐던 때를 생각해 보면 철학자 아무개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응원할 수 있던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분류로 나뉘었습니다.
1. 그 사람이 잘 되어도 나와는 전혀 다른 분야라 열등감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
2. 그 사람의 목표가 내가 이미 이룬 일인 경우
3. 지금의 나보다 낮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경우
이 세 가지 경우 말고는 도저히 응원의 말을 건넬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내가 이미 이룬 일이더라도 남이 이 일을 이룬 후에 나보다 더 잘 살 것 같은 경우에는 역시나 응원의 말을 건네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내가 한 응원으로 그 사람이 정말 힘을 얻어서 나를 앞지르면 어떡하지?'
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마음속 어느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남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는 말을 꺼내곤 했습니다. 아니면 애써 그 사람을 무시하며 살기도 했습니다. 나보다 더 잘 된 사람을 보며 그것을 이루지 못한 나의 자아가 상처받는 것이 두려운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무의식을 옮겨둔 것만 같은 그 짧은 구절을 보고 주체할 수 없게 부끄러웠습니다. 나체 사진이 유포된 느낌이었습니다. 그 사진 속의 인물은 내가 아니라고 벽을 치며 반박하고 싶었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진이었던 것입니다. 한숨을 내쉬며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격려하고 서로를 위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글과 말을 주변에 전하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남이 잘 되는 꼴을 지켜보는 것에 거부 반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이 드는 이유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게으르고 나태한 나를, 나는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룬 사람을 보며 초라함을 느낄 나를, 결국 마음속에 상처를 입고 무기력해져서 끝없는 슬픔의 악순환을 겪을 나를 지키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끝없이 합리화하며 나 자신을 지키는 한편, 남을 치켜세우고 응원해 주기보다 그들의 성취를 깎아내림으로써 우리 둘 사이의 커다란 격차를 애써 좁혀보려는 노력의 일종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사실 남을 도와주고 싶은 선한 마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하고는 합니다. 이 복잡한 마음의 결과를 알아낸 일상 철학자 아무개는 제가 본 짧은 구절을 남긴 후 사라졌습니다. 이분에게는 칭찬을 넘어 감탄과 존경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심입니다.
여기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나의 진심 어린 응원의 배경을 응원받는 사람이 안다면, 그것은 정녕 응원일까요? 이러면 응원의 말이 오히려 관계에 금을 내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기적이지만 진심 어린 응원의 마음을 애써 숨겨야 할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 그냥 응원의 말을 건네주면 될까요. 그것은 위선이지 않나요. 차마 위선자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응원하지 않기에는 응원의 마음을 숨기는 것이니 이 또한 거짓말 같습니다. 도저히 결정할 수 없는 문제에 빠져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