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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lehLee Mar 12. 2023

노동 일기

부자가 못된 이유

열심히 살았다. 성실하게 살았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럼에도 부자가 되지 못했다. 

부자가 되지 못한 이유는 매우 많을 것이다. 능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돈 버는 방법을 모르기도 하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았다고는 하지만, 지극히 주관적이니 정말 그러했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억울하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열심히 살았고 또 성실하게 살아왔다. 국민학교 졸업하던 1976년부터 2023년까지 쉼 없이 일했다. 도대체 몇 년인가? 무려 47년을 일해왔다. 생각해 보니 보름 이상 놀아본 적이 없다. 시험 준비하느라 돈을 못 번 때는 있었어도 빈둥거리며 놀아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부자가 못 되었으니, 억울하다고 하소연할만하다. 


그러나 나는 문득 '열심히'라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 무엇을 위한 열심이었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살아온 것은 맞지만 무엇을 향해 그렇게 살았는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는지가 생각나지 않는다. 열심히 살아온 것은 맞지만 방향이 없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니 지나 온 삶이 한심스러웠다. 


쉽게 말해 목표가 없었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해야만 했다. 그러나 목표가 없었다.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무원 시험 합격이라는 목표,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을 성공시켜야겠다는 목표, 한 달 책을 몇 권 읽겠다는 목표 따위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과정의 목표였을 뿐이다. 나는 그런 목표를 통해 무엇을 이룰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목표 없이 눈앞의 성취만을 위해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는 열심히 살았노라고 징징대고 있는 것이다. 


체육관에서 10바퀴를 돌겠다는 것도 목표이다. 일정 구간을 빠른 속도로 달리겠다는 것도 목표이다. 나는 그런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매우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오래 달려도 결국 체육관 안일뿐이다. 나는 단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일을 해왔던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열심히 해냈다. 그리고 체육관 문을 나서고 나니 나는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시간은 훌쩍 흘러 어느새 해는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다. 내게 남은 시간은 넘어가버린 해가 남긴 조각난 빛이 있을 때뿐이다. 이마저도 곧 어둠 속에 묻히고 말 것이다. 이 찰나의 순간에 나는 최대한 멀리 가야만 한다. 어둠이 내 몸을 삼키는 순간까지라도 나는 앞으로 가야 한다. 


쉽지 않다. 체육관에 익숙해져 버린 내 몸은 자꾸만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곳에 길이 있다고 믿고 싶어 진다. 거친 들판과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길이 두렵기도 하다. 그것이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그러나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두려워도 이 길을 가야 한다. 이제 나는 삶의 목표를 정할 것이다. 과정의 목표가 아닌 내 삶을 관통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해 갈 것이다. 가다가 스러질 수도 있다. 어둠이 내려 흔적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내 목표를 이루어 낼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나는 갈 것이다. 이것이 내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가장 아름답게 쓸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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