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에서 만난 이승만의 삶
아침 일찍 프린스턴 대학교로 향했다. 캠퍼스에 들어섰을 때, 아름다운 건물들이 가득해 '이곳에서 공부하면 진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승만 관련 사료를 실물로 보는 팀이 들어간 사이, 박사님을 따라 캠퍼스 투어를 했다.
캠퍼스 투어 중 존 위더스푼 동상 앞에서 설명을 들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6대 총장이자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유일한 목사였다. 위더스푼은 수많은 건국 지도자들을 길러내며 신앙과 자유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프린스턴 대학교에 이승만 홀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 자랑스러웠다. 수업중이라 건물에 들어가서 볼 순 없었지만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 이렇게 멋진 발자취를 남겼는데,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중간에 만난 전쟁 메모리얼을 보며 미국은 나라를 위해 희생된 자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대학교 투어를 마친 후 프린스턴 신학대로 향했다. 대학교에서 신학대까지 걷는 짧은 거리에도 동화 같은 건물과 토익 LC에 나올 법한 풍경들이 가득했다. 신학대는 대학교와는 달리 작은 부지에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귀여운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이승만이 쓰던 기숙사 건물을 봤다. 현재는 그 방은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어 내부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창문을 통해 흐릿하게 구경했다.
이 작은 방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나라의 독립과 건국을 위해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홀로 공부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뭉클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한국에서 온 아들과 함께 지내며 돌볼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만적인 캠퍼스 점심과 폭풍 쇼핑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기념품샵에 갔다. 프린스턴의 주황색 굿즈들이 가득했지만, 내 마음에 드는 물건은 없어서 구매하지 않았다. 대신 조원들의 폭풍 같은 쇼핑을 구경하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옆 마트에서 샌드위치와 음료를 사서 캠퍼스 안으로 향했다. 벤치나 담장에 걸터앉아 먹으려 했지만, '요한의 집'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 앞에서 테이블을 내어주셔서 낭만적인 캠퍼스 점심을 먹었다. 날씨도, 풍경도, 함께 하는 사람들도 너무나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여기서도 우리 조는정말 시끄러웠다. so lovely)
견미단 일정을 받았을 때, '이태산 묘지'를 보고 이승만에게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하와이에서의 삶과 프린스턴에서의 고난을 직접 밟고 이곳에 오니, 마음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이승만은 반가운 아들과 함께 지낼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모두 없었다. 그는 아들을 돌봐줄 사람에게 맡겼으나, 갑작스러운 위독 소식에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의 일기를 보면, 이승만은 깊은 슬픔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주님께서 맡기신 더 큰 사명을 위해 다시 강연을 다니며 공부하고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자식을 잃은 아비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지만, 그는 슬픔에 머물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만나러 미국으로 온 태산 역시, 낯선 나라에서의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버텼을 그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나라를 위한 소명 앞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한 눈물을 삼키는 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이태산의 이름을 아는 이는 드물고, 이승만이 어떤 마음으로 미국에서의 고난을 견뎠는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깎아짐을 통해 한 나라가 건국되었다. 그 한 사람을 잊지 않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한다.
일정을 마치고 필라델피아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었다. 저녁 식사는 조별로 진행되었는데, 만장일치로 한식이 나왔다. 하와이에서 매일 한식을 먹었는데도 며칠 못 먹었다고 한식이 너무 그리웠다.
숙소 근처 한식집 '북촌순두부'를 찾아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 먹었다. 부대찌개는 정말 맛있었지만 한국에서 먹는 한식의 얼큰함은 없었다. 얼큰 칼칼 시원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