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두었던 비전의 작은 태동
필라델피아에서의 주일, Enon Tabemacle Church에서 현지 예배에 참석했다. 교회에 들어선 순간부터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자유롭고 뜨거운 분위기의 찬양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영어라 설교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미국에 있는 동안 처음으로 '영어 공부를 진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처음 온 사람들을 앞으로 나오게 해서 축복해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모두가 따뜻하게 반겨주고 축복해주는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친구에게 이 교회를 말하니 바로 아는 것을 보니 찬양으로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영어를 더 알아듣게 된다면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오후에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대륙군이 동계에 주둔했던 밸리포지(Valley Forge)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책임 장전(Bill of Responsibilities)' 비석을 마주하며 진정한 자유와 책임, 그리고 권리와 의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법은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격언을 접했을 때, 그저 가볍게 넘겼던 내가 이 비석을 보고 뜨겁게 요동치는 마음을 느꼈다. 이것이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자유를 지탱하는 근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과거 법을 전공할 때, 법이 정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열정을 잃었었다.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깨달았지만, 학문과 신앙을 나누어 생각하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인 법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채 오해하고 있었다.
책임 장전은 자유와 책임에 대한 구체적 행동 지침을 담고 있었다. 본문 아래, 분리된 두 개의 문구를 보고 멈칫했다.
- 근본적 믿음은 하나님께 있다 (Fundamental Belief in God)
- 헌법적 정부는 시민의 적극적 참여에 의해 유지된다
본문을 지탱하고 있는 이 문구의 위치에서, 모든 자유와 책임은 하나님 말씀에 기초하며, 우리의 행함으로 실현된다는 사실이 명확히 깨달아졌다. 나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한다고 했지만, 사실 삶 속에서 부정하고 있었다.
미국의 건국이념과 헌법이 성경적 가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건국과 헌법 제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법과 통치체계 또한 성경적 가치를 기반으로 세워진 것인데, 왜곡된 배움 속에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내가 부끄럽고 후회되었지만, 동시에 학문과 신앙을 이분화시키며 놓쳤던 하나님이 주신 법의 중요성을 비로소 깊이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안내해 주신 미국 군인 출신의 원장님이 정말 귀여우셨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교육과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설명하시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고 멋있었다.
밸리포지를 다녀온 후 박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대청이들은 택시를 타고 숙소로 먼저 돌아갔다. 우버 안에서 기사님의 "open the window" 에피소드는 미국 여행 중 가장 웃긴 순간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미리 준비해둔 피자, 시리얼, 컵라면을 먹고 우리교회 주보를 같이 읽으며 나눔을 진행했다. 주보를 읽는 것이 이렇게 은혜스러웠는지 교회에서 떨어지니 새삼 느껴지고 감사했다. 그 어떤 것보다 구원의 은혜가 가장 먼저고 절대 잊지 말아야 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타지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대청이들이 있음에 감사했다.
이후 조별 발표 시간에 박사님께서 이승만의 유학 생활이 30세부터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 역시 지금 만 30세라 공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낮에 봤던 책임장전과 함께 아주 작은 용기가 생겼다.
이번 숙소는 Wyndham Philadelphia Historic District였고, 룸메이트는 조장님이었다.
숙소 서비스는 다소 아쉬웠다. 객실 청소를 매일 해주지 않았고, 조장님 침대에는 발자국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드라이기도 없어서 머리도 못 말리고 앞방에서 빌려야 했다. (조식은 제일 맛있었다.)
하지만 룸에 대한 서비스와 별개로, 객실에 들어와 서랍을 열었는데 성경이 있어서 너무 감동적이고 감사했다. 이 성경은 보통 기드온 협회(Gideons International)에서 호텔에 무상으로 비치하는 것으로, 삶의 고통과 외로움 속에 있는 여행자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려는 오랜 전통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 뜻을 알고 보니 미국에서 만난 성경이 더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