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 D.C. 가는 길
필라델피아를 떠나기 전 아침에 한국전쟁 메모리얼을 들렀다. 높이 걸려 있는 성조기와 태극기 아래, 10년의 모금 기간을 거쳐 한인들이 애써 세운 기념비에는 전사하거나 실종된 600명이 넘는 군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고 다친 이들을 위해 우리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현실을 알게 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참전용사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대한민국이 과연 지금 정말 영광스러운 나라로 서 있는가, 스스로 되묻게 된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떠나야만 했던 이들의 여정을 생각하니, 그동안 내가 그 자유를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다는 걸 깨닫는다. 감사할 줄 모르고 철없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그들의 희생이 더 깊이 마음에 새겨졌다.
필라델피아를 떠나 메릴랜드의 항구 도시 아나폴리스로 향했다. 인구 3만 9천 명의 작은 항구 도시인 이곳은 한때 미국의 임시 수도였으며,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곳이다.
도시의 모든 건물이 아기자기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돌아 신혼여행지로 찜했다. 주의회 건물이 지어진 이후 단 한 번도 용도가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도 인상 깊었다.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하지 못한 건 조금 아쉬웠다.
점심 식사는 The Narrows Restaurant에서 했는데, 정말 맛도 뷰도 최고였다. 이 지역 대표 요리인 크랩케이크(Crabcake)를 시켰는데, 부드럽게 퍼지는 게살의 풍미가 너무 좋았다. 손님이 오면 대접해주는 특산 요리라고 하니,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잔잔한 물결과 윤슬이 반짝이는 풍경은 세상을 다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나는 사람 북적이고 활기찬 곳보다는 이런 고요하고 예쁜 풍경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조용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세인트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는 서양 고전 도서 100권을 읽고 토론하는 'Great Books Curriculum'으로 유명한 곳이다. 캠퍼스를 거닐고 벤치에 앉아 평화로운 하늘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이곳 역시 세계대전에 참전한 학생들을 기리는 메모리얼이 자리하고 있어,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깊은 예우를 표하는 미국 문화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노예들의 모세'라 불리는 헤리엇 터브먼의 설명을 듣고 잠시 버스에서 내려 그녀의 기록이 남아있는 곳을 걸었다. 그녀는 혹독한 노예 생활을 겪고 목숨을 걸고 탈출했지만, 가족과 다른 노예들을 위해 지하철도의 일원이 되어 300여 명의 노예를 데리고 탈출시키는 길을 몇 번이나 왕복했다.
그 용기와 사랑은 정말 놀라웠고, 내가 살면서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히든 피겨스>가 떠올랐다. 헤리엇 터브먼의 발자취를 보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걸 만큼 헌신하고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때로 내 자신을 돌보는 일조차 버겁고, 가까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어려울 때가 있는데, 그들은 자신을 넘어 타인과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다. 그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내면에는 어떤 믿음과 확신이 있었을까. 깊이 생각해 보았다.
워싱턴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하러 나섰다. 베트남 음식점 PHO 54에서 쌀국수를 먹었는데, 양식만 먹다 보니 향신료가 그리워 먹어봤다. 나쁘지 않은, 그렇다고 생각나지도 않을 적절한 저녁식사였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애들이 가는 길에 흥 폭발이었다. 태블릿으로 팁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실수로 1%를 선택해 굉장히 멋쩍었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저녁을 안 먹은 조원들 간식거리를 사서 돌아가는 길에는 MD와 SJ의 비둘기 쇼가 있었다. 우리의 도파민 트리거는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었다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