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것을 발견하는 시간
워싱턴 D.C.에서 가장 마음 아프면서도 경건했던 곳 중 하나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었다. 1889년 외교공관이 개설된 이곳은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뺏기기 전까지 16년간 조선의 외교 중심지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5달러에 강제 매입되었지만, 광복 후에도 소유권을 되찾지 못하다가 2012년에야 재매입되었다는 역사가 안타까웠다.
나는 정보가 넘치는 2025년에 단체로 미국에 와도 무서운데, 1800년대 상투 틀고 한복 입던 그 시대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미국이란 나라에 왔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사관의 모습을 재연하느라 많은 노력을 하신 것 같았다. 다만 장소 소개뿐 아니라 그곳에서 일어났던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가감 없이 전하는 장소로 사용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권도 전시되어 있었다.
정확히 어떤 곳인지 모르고 방문했던 Family Research Council (FRC)에서 데이비드 클로슨 소장님의 성경적 세계관 강의를 듣게 되었다. 미국에도 이러한 기독교 우파 싱크탱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비단 우리나라만의 세계관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든든함을 느꼈다.
강의 내용은 내가 교회에서 늘 듣고 자라던 말씀이라, 지금 내가 좋은 교회에서 바르게 배우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소장님은 '하나님이 세운 성경적 질서를 파괴하는 일' 앞에서는 교파나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하나 되어 움직인다는 말씀에 감명을 주었다. 수많은 교파와 이해관계 속에서 하나 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크게 남았다.
청년들에게 "성경을 알고 읽고 공부하세요!"라고 강조하셨다. 성경을 매일 읽고 나눔 한다는 소장님 부부의 이야기에 '나도 성경을 매일 못 읽는데 그런 남자를 만날 순 없겠구나' 싶어 마음을 접었지만, 그만큼 성경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깊이 다가왔다.
<자유의 헌장> 원본을 볼 수 있는 국립 문서 보관소를 찾았다. 짧은 시간 안에 보고 와야 해서 사진만 후다닥 찍고 나와야 했다.
하와이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박사님의 <자유의 헌장>을 통해 독립선언서와 미국 헌법의 문구들이 성경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장을 직접 밟으며 느낀 것은, 미국의 시작과 뿌리가 분명히 성경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었다.
미국과 달리 우상숭배가 깊이 뿌리내려 절망 속에 있었던 조선 위에, 하나님은 전적인 은혜로 복음을 기초로 한 대한민국을 세우셨다. 복음으로 세워진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나라이고, 이 나라에 속해 살아가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인 열 명'처럼, 내가 그 의인 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나라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를 계속해서 고민한다.
아메리칸 대학 캠퍼스 한쪽에 조성된 이승만 벚꽃 가든을 찾았다. 미국에서 반일감정이 일어난 틈을 타 한국을 어필하려던 이승만의 노력이 느껴졌다. 벚꽃 하나에도 나라와 연관지어 어떻게든 대한민국을 알리고자 했던 그의 나라를 생각하는 깊이는 알수록 대단하다. 여기에도 하와이 한인들의 손길이 있었음에, 하와이가 상해나 만주 못지않은 독립운동 기지였다는 사실이 이승만과의 연관성으로 잘 안 알려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메리카 대학 캠퍼스의 청춘들도, 우리나라 국부의 사랑도 낭만적이었다.
북한청년리더총회 의장 이현승님의 특강은 어린 시절 북한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었었기에 더욱 기대됐다. 고위층 엘리트였던 그의 이야기를 통해 북한이 얼마나 자유가 없고, 가차 없이 사람을 죽이며, 정보가 단절된 사회인지를 다시금 생생하게 느꼈다.
견미단 일정의 마지막이 통일이라는 주제로 마무리된 것도 의미가 있었다. 통일 비전을 품었던 나조차 현실에 묻혀 잊고 있었다.
10대 시절 품었던 '법을 통해 북한의 약자들을 돕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잊었던 나를 돌아보며 이번 강의를 계기로 내가 무엇을 하며 나아가야 할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맞이한 워싱턴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빡빡한 여정 속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꽉 차게 얻어감에 감사했다. 이번 견미단을 통해 헌신적으로 섬겨주신 이끌어주신 리더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조금은 여유로운 밤을 보내며, 잊고 있던 비전을 다시금 되새겼고 이 소중한 미국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이 함께 밀려왔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이곳에서 얻은 통찰과 감동을 삶 속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아직은 어려운 마음으로 마지막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