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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친구가 필요해...

by 온혈동물

또다시 비가 오는 캘리포니아의 월요일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 달에 한두 번은 일하는 날 펑크를 내는 직원이 오늘도 애가 아프다며 나오지 않았다. 진료는 일정하게 잡히는 데 갑자기 이렇게 안 나오면 나온 사람들만 하루 종일 죽어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은 제대로 된 검사를 하려는 사람이 적어 크게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하루가 끝날 때 즈음에는 모두가 지쳐있었다.

애리조나에서 와서 일하던 리셉션을 보던 직원이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직원 중 한 명의 집에서 저녁 겸 송별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일 끝나고 삼십 분씩 운전해서 오락가락하기도 귀찮고, 내일은 수술도 있는데 컨디션을 축내기도 싫어 선물만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드는 생각은 '아, 놀고 싶다.'였다.

한국에서는 일 끝나고 저녁에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하는 것이 가끔씩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서 만나고 헤어지니 부담도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일단 어디로 가려면 운전을 해야 하고, 대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 적당히 마시고 운전해서 돌아와야 한다. 합법적으로 말하자면 아예 마시지 않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생일에 직원들이 선물해 준 소설을 아직도 읽고 있는데, 반쯤이나 읽어도 도무지 아직도 재미가 없다.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보: Jo Nesbo'의 소설 중 스릴러 물로 10권의 시리즈가 나와있는 책이다. 그는 소설가이자 경제학자, 저널리스트, 밴드 'Di Derre'의 보컬이라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밴드의 보컬이었던 경제학자가 쓴 책을 어떨까 하고.

아직은 재미가 없다. 직원들이 시리즈 중 세권이나 선물을 해줘서 한 권이라도 끝내야지 아니 도대체 어떻게 끝을 내려고 이려나 하는 생각으로 읽는 중이다.

평생 읽은 책이 몇 권인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사람들의 대화는 어떻게 표현하지?'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 막혔던 탓에, 저 사람도 전문 소설가가 아니었으니 어떻게 썼나 보자 하는 생각이었는데, 아직까지는 왜 그렇게 유명해져서 전 세계로 팔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어젯밤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병원의 수의사가 뜬금없이 문자를 보내서 '다음 주 화요일에 매니저랑 진료 스케쥴링 문제로 의논할 건데, 잘 안되면 그만둔다고 협박을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한다. 나는 이미 그 매니저한테 질려서 다른 병원으로 가기로 한 상태라 이미 매니저의 막무가내 스타일을 잘 알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매니저들은 수의사들을 오냐오냐 해주며 우쭈쭈 해주는데, 가끔 막무가내인 매니저도 있다. 그럼 싸우거나 나가거나 둘 중에 하나 하는데, 풀타임이라면 싸웠겠지만, 파트타임이라 그냥 병원을 옮기기로 했다.

그 병원의 수의사는 착한 대만계 출신 여자인데, 내가 아는 수의사들 중 유일하게 술을 먹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끔 술 한잔 하곤 했는데, 최근에는 남자친구가 생겨 바쁘다. 얘는 엄청 착한데 항상 남자친구는 애처럼 치대는 사람들을 만난다.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이제는 자신을 배려하는 어른스러운 남자를 만나고 싶다'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스타일로 보인다.


어쨌거나 여기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최소 십 년 이서 이십 년은 어린 친구들이다. 같이 병원 얘기나 남자친구 얘기를 해줄 수는 있지만, 어른들의 대화를 하기는 어렵다.

남편에게 "나 술친구가 필요한데."라고 했더니 웃는다.

'진짠데' 나는 속으로 말한다.


아, 오늘은 끝나지 않는 요 네스뵈의 해리 홀 형사물을 읽으며 코냑 한잔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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