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May 10. 2022

거창한 인간관계론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낯선 언어와 생활들에 정신이 없어서 인간관계라는 것 따위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일 이년이 지나고,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 여러 해 동안 동물병원에서 수의사로 일했었기에 수많은 낯선 혹은 적당한 거리의 아는 사람들과의 적당한 관계에 나름 정통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의 병원은 내가 혼자 하던 한국의 병원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과의 관계는 한국보다 훨씬 수평적인 느낌이었다. 내가 오더를 내려야 하지만 또한 그들의 의견도 같이 수렴해야 하는, 그리고 그들도 내가 하는 일의 결과를 평가하는 느낌들. 그리고 또한 만들어야 하는 적당한 인간관계들, 아침마다 하는 "How are you doing today?". 어차피 다른 답을 서로 하지도 않을 거면서 묻는 매일의 인사. 모든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나는 나름의 중년의 애엄마인 이민자이고, 병원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거의 이십 대 초반에서 삼십 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이었다. 서로 공통점도 별로 없는 정말 어색할 수도 있는 관계일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수의사에 테크니션이 진료에 대해 반문하기. 

사람들은 당황할 때 서로 다른 반응을 나타낸다.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아무렀지도 않은 척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겉으로라도 "cool"한 사람인 것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즈음부터 매일 병원에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찾아서 읽게 된 책이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었다. 사실 나의 상황에 백 프로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나름 마음의 위안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어떡하면 마음의 평화를 찾을까 싶어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강의를 무진장 듣고 있기도 하던 때였다. 그런데 50년도 지난 미국의 인관관계의 컨설턴트인 데일 카네기와 현재 한국에서 사람들과 소통하시는 한 스님의 이야기가 어쩌면 기본적으로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게 말하면- 모든 것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렸다는 거. 


그렇게 책을 읽으며 동영상을 들으며 적응해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에 내 방식이 생소하던 직원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 경험치의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나도 그들을 적당한 거리에서 나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어렸을 때, 나는 독서 마니아였다. 읽을 책이 있을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물론 대단한 책을 읽었던 거 아니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시골의 작은 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 애드가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인 관계로, 공포소설과 추리소설에 심취해있었던 때였다. 그러다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로맨스 물에 몰입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싫어하던 장르가 자기 개발서였다. 그런 내가 미국에서 데일 카네기의 글을 읽기 시작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소설이 아닌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독서가 예전에 추구하던 오락이 아닌, 내 삶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내 인생을 멘토를 찾기 위한 독서가 시작된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