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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y 10. 2022

내 안의 아이

어린 시절의 제제

어린 시절 나는 강원도 시골에 살았다. 조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 주로 살며,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시는 부모님을 따라 다른 근처 작은 마을에서 잠시 지내기도 했다. 어떤 곳은 전기가 들어오지도 않았고, 텔레비전도 한 채널밖에 나오지 않은 아주 외진 곳들이었다. 요즘처럼 케이블에 수많은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세상에서 한 채널만 볼 수 있다는 게 아마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건, 한 방송사에서 일요일 오전에 하던 만화채널로, 그걸 보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마을로 주말에 나가는 게 큰 기쁨이었다. 


워낙 시골이라 다른 게 별로 할 게 없는, 그냥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고, 어른들 따라 감자나 옥수수를 따는 게 전부였던 아이들과 달리, 선생님인 부모님의 특혜(?)로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간 오후에 텅 빈 학교에서 교실 하나 크기의 도서관을 차지하는 것이 나와 내 동생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었다. 오후 내내 도서관에서 몇 개 안 되는 책들을 보는 것이 나에겐 크나큰 즐거움이 되곤 했다. 


그 상이 초등하고 저학년의 아이인 나에게 비치는 어른들은 항상 화가 나 있고, 슬퍼하거나 싸움을 하는, 뭔가 항상 격렬한 감정에 젖어있는 피하고 싶은 대상들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월급날마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부딪히고, 나는 늘 어딘가에 동생과 숨어있었다. 그때 만난 나의 오렌지 나무의 제제가 나에게 큰 의미가 되었다. 어리고 영리하지만 어른들에겐 문제 투성이인 제제, 나와는 좀 다르지만 나는 그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제제와 다르게 어른들의 레이다를 피하는 나름의 요령이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제제보다 정신적으로 덜 고민하고 삶을 더 단순하게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어릴 때부터 나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했다. 그때마다 어른들은 그런 말 하는 사람이 먼저 간다고 해서 나의 속을 뒤집어 놓곤 했다. 어린 나에게 결혼한 어른들은 모두 불행해 보였고, 엄마는 항상 엄한 할머니와 불같은 성격의 아버지 사이에서 힘들어하시는 게 안타까웠다. 결국 어른이 된 나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생겼지만, 아직도 결혼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나의 결혼이 불행하진 않다. 난 우리 아빠와 정반대의 성격의 느긋하고 친절한 남편과 늘 안절부절못하던 엄마와 다르게 편한 마음으로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바를 나름 하고 사는데 만족하고 있다. 


최근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다시금 보게 되었다. 읽어주면서 너무 많이 눈물이 나서 제대로 읽어주기가 힘들었지만 말이다. 어릴 때는 나름 제제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는데, 아마 어른이 되어서는 어른으로서의 죄책감이 들어 그런 듯하다. 요즘 나오는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를 보며, 십 대 우등생 두 아이가 아이를 갖게 되고 서로 사랑을 깨닫고 아이를 지키고 싶어 하는 내용을 보면서, 왜 어릴 때 단순하고 즐거웠던 삶이 어른이 되어서는 이리도 복잡하고 괴로울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어른이 되면 욕심이 많아져서-이다. 그리고 주변과 항상 비교하며, 돈은, 집은, 차는 혹은 아이는, 모든 것이 채워져야 한다 행복해질 수 있다 생각하는 것 같다. 


난 오 년 전에 우리 아이들과 미국으로 왔다. 나름 몇 년은 준비 끝에 와서, 나름 금방 직장도 얻고 영주권도 따고, 아이들도 생각보다 잘 적응해서 큰 무리 없이 살고 있긴 하지만, 스펀지처럼 언어와 생활에 적응하는 아이들과 다르게 어른이 나와 남편은 영어가 아직도 큰 벽이다. 일하는데 문제없는 정도는 돼서 다행이다 싶긴 한데, 여기서 나는 평생 이방인이겠다 싶은 생각은 든다. 


예전에 어른들을 보면 저만큼 늙으면 마음도 늙겠지 했는데, 이제 안다,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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