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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Dec 11. 2023

나이가 들어야만 생겨나는 것들...

이십 대에는 삼십 대도 머나먼 남의 일처럼 느껴졌고, 심지어 사십 대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나이 듦에 대한 감회가 새롭게 느껴진다. 내가 알던 사람들은 미국에 오면 나이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말했지만, 왠 걸. 병원에서 같이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십 대 초중반이고, 간혹 삼십 대가 있다. 심지어 수의사들조차 사십 대는 드물고 이십 대나 삼십 대가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이십 대인 동료들은 삼십 대가 되는 것에 서글픔(?)을 표현하니, 나이에 대한 선입견은 어디나 비슷하지 싶기도 하다. 얼마 전에 병원 매니저가 최근 새로운 테크니션을 인터뷰했는데 98년도부터 일을 시작한 사람이라 40대 정도로 나이가 엄청 많을 것 같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다. 


              '신이 당신을 다시 이십대로 돌아가게 해 준다면 돌아가고 싶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가 다시 젊어지는 것을 마다할 것인가? 그런데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에 한 표를 던질 것 같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을 다시 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시 고민해 살아본다 한들, 겪어야 하는 아니 거쳐야 하는 고민과 갈등을 아예 다시 겪지 않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15년 정도 동물병원에서 일을 했고, 그중 십 년이 좀 넘는 기간은 내 병원에서 오너로 일을 했었다. 그 기간 동안 정체된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매일 일을 하지만 전혀 발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6년 전 미국에 들어왔다. 초반의 짧은 학교생활과 다시 시작한 임상은 처음에 무척 낯설고 새로웠다. 다른 시스템, 다른 방식의 진료 스타일은 때론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게다가 낯선 나라에서 영어로 일을 해야 하는 생활들. 상하관계가 일반적인 한국의 수위사와 직원들의 관계는 좀 더 수평적인 동료 관계에 가까웠다. 

물론 그조차도 호주나 유럽에서 온 수의사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는 직원과 보호자들에 익숙하여, 굳이 닥터라고 부르는 미국의 수의사들이 더 권위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일한 지 5년의 시간이 지나간다. 내가 한국의 정체되었다고 생각했던 15년은 이제 조금씩 빛을 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연봉에 딱 두 배의 연봉으로 조정되었고, 보호자들에 대한 관계나 수술에 대한 나의 숙련도는 나를 다른 이들보다 좀 더 인정받는 존재로 만들었다. 내가 아무런 발전도 없었다고 생각한 그 기간들이 다 경험으로 쌓였다는 걸 이제 알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강아지나 고양이들도 감정이 있고, 다 다른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과 몸짓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준다. 그러니 그들의 바디랭귀지를 보며 주의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들이 무서울 때 하는 행동은 숨거나/짖거나/물거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강아지가 무서워서 물을 수 있는지 아니면 그냥 숨고 움츠러 들건지를 잘 판단해야 물리지 않고 진료를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어디가 아픈지도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내야 하는 것도 수의사의 몫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아주 발달한다 하더라도 과연 수의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텔레메디신도 어느 이상은 권장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보호자들은 자신의 개와 고양이를 무척 사랑할지 몰라도 그들이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믈다. 가끔 눈이 아프다고 와도 치아의 문제이거나, 변비라고 하는데 설사로 너무 많은 변을 보고 그냥 계속 짜내는 걸 말하기도 한다. 


그냥 어떤 것들은 시간이 지나야 만 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맞는 말인 것 같다. 

오늘 시작한 책 제목이 'Just keep buying: 그냥 계속 사라'이다. 투자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계속 사서 이윤을 보려면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33살인데, 이 책을 감수한 한국인 투자자의 멘트가 '자신보다 20살이나 어린 사람이 이십 년을 투자에 몸담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였기에, 물론 시간의 가치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닌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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