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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an 29. 2024

흥정하며 살 수밖에...

2017년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학생비자를 위해 들어간 수의과 임상과정을 위해 루이지애나라는 미국 남쪽 시골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첫 이주일은 한주는 영주권을 진행해 주는 캘리포니아의 동물병원에서 잠시 병원생활을 둘러보았고, 두번째 주는 가족들이 도착하기 전 이것저것을 미리 준비하려고 루이지애나로 날아갔다. 아무리 국내선이라지만, 비행기를 탈 때 조종석이 보이는 작은 비행기를 처음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며 그곳에서 혼자 준비를 시작했다. 

처음 일주일은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미리 온라인을 통해 구해둔 아파트에 도착해 전자레인지나 식기들을 코스트코에서 부지런히 사서 날르며 집안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망의 자동차 구입을 위해 혼다 매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까지 나는 한국에서도 차를 사본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어떻게 해야 하나 막연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영주권을 해주던 병원 원장과 그곳에 나를 소개해준 수의사도 미국에서는 차 딜러샵의 딜러들이 악명(?)이 높다며 미리 경고를 해준 바가 있기에 더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간 혼다 딜러샵은 중고차와 신차를 모두 판매하던 곳이었기에, 나의 목적은 내가 학교에 타고 다닐 중고차와 가족들이 탈 새 미니밴을 사는 게 목표였다. 그리고 그곳은 중고샵과 신차샵이 입구가 달랐기에 일단 중고샵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체격이 좋은 한 백인이 다가와 나에게 물건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새 차도 보고 싶다는 언질을 비쳤고, 그는 신이 나서 중고 혼다 어코드와 신차 미니밴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신은 중고샾에서 일하기에 신차는 다른 빌딩에 가서 확인해야 한다며 잠깐 기다리라고 하며 사무실에서 나간 후 거의 두 시간 이상 나를 기다리게 했다. 금방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기다리던 것이 점점 초조함으로 바뀌어 가고 이후 진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건 카 딜러들이 손님들의 기운을 빼는 흔한 수법 중의 하나라고 알게 되었다. 기다리다 지친 손님들이 나중에 자신들이 제시하는 가격을 귀찮아서라도 그냥 오케이 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찌어찌해서 중고차에서 3천 불을 깎아주는 척하며 새 차를 제값에 다 받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되었고 나는 그 인질극에서 풀려나 집에 오게 되었다.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과연 내가 이 가격에 사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다른 차 딜러샵에 이메일로 신차 가격을 문의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제시한 것보다 3만 불을 더 적게 부르는 게 아닌가. 미국에서 차 판매는 월말에 한 달의 실적을 보고하게 되는데, 그래서 월말에 사게 되면 월초보다 가격을 더 싸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도 듣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계약서에 사인한 곳에 전화를 걸어, '다른 곳에서 이 정도 가격으로 주겠다는데, 나는 그 가격으로는 거기서 살 수가 없다'는 의사를 비쳤고, 약간 흥분한 그 딜러는 '네가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 가격에 살 수가 없다'면 항변했고, 결국 나는 그 가격에 새 차와 삼천불을 깎은 중고차까지 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도 흥정이라는 것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가격을 가지고 이래저래 논쟁하는 걸 너무 불편해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내 성격 자체가 급해서 그냥 손해가 아니다 싶으면 그냥 사는 편에 속했다. 그런데, 이건 너무 큰돈이기도 하고, 내가 미국까지 와서 이렇게 시작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듯하다. 처음 미국에 와서 서툰 영어로 거둔 성과치고는 괜찮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두 달이 지났을까- 참고로 말하자만 루이지애나는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리고, 한번 내릴 때는 폭우처럼 쏟아지기가 일쑤인데- 그날도 학교를 마치고 저녁 6시쯤 집으로 가기 위해 캠퍼를 운전하고 있을 때였다. 그 학교는 이상하게도 학교 캠퍼스 안에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가 있는데, 철로로 진입할 무렵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고, 철로 건너편에 차가 밀려있어 내가 들어가면 철로 중간에 차를 정차하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아는 운전 지식으로 철로 중간에 차를 세우는 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나는 급하게 철로 앞에서 잠시 정차를 했고, 그 직후 먼가 내 차뒤를 세게 후려치는 느낌을 받았다. 내려보니, 뒤에 한 트럭이 급정거를 하려다 빗길에 미끄러져 내 차를 박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차 운전자도 착한 학생이었던 건지, 내 진술에 다 동의해 주어 나에게는 어떤 범칙금이나 벌점도 받지 않았다. 


미국에 온 지 삼개월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그 이후 들은 얘기로는, 전에 나처럼 미국수의사 준비를 위해 학교에 왔던 한 한국 여자 수의사는 나처럼 온 지 몇 달 안 돼서 교통하고 가 나고,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다 학교도 마치지 않고 다시 한국에 돌아갔다고 한다. 



2024년에 들어 처음 받은 페이첵에 나의 직장연금이 401k에 당연하게 되어있어야 할 나의 개인 부담금과 회사에서 부담해 주는 매칭금액도 들어있지 않았다. 깜짝 놀라 회사에 연락해 보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어떤 답변도 듣지 못해, 나의 직속상관과 매니저에게 연락해보기도 했다. 미국 직장에서 주는 직장 연금은 내 연봉의 일부분을 내가 연금계좌에 넣으면, 회사에서 그 돈의 절반 가량을 더 넣어주는 시스템으로, 월급이 아닌 보너스 같은 꼭 받아야 할 만 돈인데, 이게 빠지면 내가 회사에서 받을 돈도 못 받는 것이다. 

결국 회사에 온라인의 헬프 데스크에, 이 상황이 어찌 벌어진 건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다음 페이첵에서는 제대로 나가도록 해야 하지 않겠냐 항의했고, 나중에 온 답변이 회사 시스템 오류인 것 같고, 이번에는 꼭 나갈 것이고, 전에 못 받은 것도 연금회사에 회사에서 돈을 더 넣을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가끔 당연히 내 몫이지만, 그것을 받는데 어느 이상을 노력이 요구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해야 할 때는  성격이 급한 나 같은 사람은 그게 해결될 때까지 안절부절못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기면 만약의 경우를 위해 나는 그 일이 벌어진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두기도 한다. 그러면 그 최악의 시나리오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대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기에 마음에 안정을 찾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고등학생인 첫째와 초등학생인 둘째가 테니스를 시작했다. 5명 정도 강사에서 일주일에 두 번 강습을 받는 건데, 10주의 레슨비가 1500달러인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파트타임으로 있는 병원의 매니저에게 추가 근무를 부탁했었다. 그리고 이번주가 첫 번째 주였는데, 남편의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는 걸 쉬는 날 아이들을 데려다주며 깨닫게 되었다. 큰애는 원래 일주일에 두세 번 헬스장에서 크로스핏을 하고 있었고, 둘째는 주 일회는 체조를 하고 또 하루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었기에, 기존의 이것들에 병행해 테니스까지 하니, 아이들의 스케줄에 어른이 죽을 지경이 된 것이다. 한국이면 동네에서 걸어도 가고, 학원차도 타겠지만, 미국에는 도통 부모가 왔다 갔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저녁시간에 아이들에게 당분간만 테니스에 전념하고, 크로스핏과 체조는 그만하는 게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어보니 특별한 저항 없이 수긍을 했다. 비용적인 부분도 만만치가 않을 것을 아이들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풀타임과 파트타임을 하는 내가 추가 근무 없이 이 비용을 낼 수 없지는 않다. 하지만, 개인이 일을 하는 것은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윤이 있어야 한다. 

책 '자동 부자습관'에서는 반드시 소득의 10프로를 자신에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아이들은 먹을 것을 사 먹을 때나 무언가를 할 때 돈이 든다는 걸 인지하고, 돈이 많이 들면 자신들도 걱정을 한다. 어떤 부모들은 자식이 돈 걱정은 전혀 하지 않길 바라는 것 같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돈에 대해 생각을 하고 돈을 벌고 쓰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부모님이 나에게 '아껴 쓰고 저축하라'라고 가르쳤다면, 나는'아끼고 저축하여 투자를 하라'라고 가르칠 것이다. 돈이 놀고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책 '비즈니스 협상론'에서는 협상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준다.   인생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협상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흥정'이라는 부분이 꼭 옷을 살 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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