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선균'배우를 기리며 그동안 보지 안았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기 시작했다. 한국 중년들의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봤다고 들었는데, 한국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느껴졌다. 부작용이 하나 있다면, 극 중에서 사람들이 매일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와서인지 평소 쉬는 날이 아니면 술을 먹지 않는데 주중에도 자꾸 술이 생각나게 했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감은 짧고 단발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고, 삶에 대한 고민과 허탈감은 점점 더 길고 깊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마도 어른이 되어 겪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그렇게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오늘은 병원 예약이 한가하여 일찍 집에 귀가하게 되어,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강아지와 산책을 나갔다. 내가 사는 샌디에이고는 일 년 내내 비가 오는 일이 드물고, 와도 정말 잠깐 내리고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아침부터 나름 센 강도의 비가 내렸고, 산책을 시작할 때 부슬거리던 비는 얼굴을 적실 정도로 좀 더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일단 걸으면 기분이 좋고, 한국처럼 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어서 한적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요즘은 조금씩 달리기도 해서 나름 운동 같은 느낌도 들기도 한다.
지난주에는 주 오일 근무에 하루 추가근무를 신청해 6일간 일을 했다. 아직은 내 시간을 팔아 돈을 벌 수밖에 없지만, 내 시간이 미국 대다수의 근로자보다는 월등히 높기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주 하루 일하는 파트타임 직장에서 고양이가 이물을 먹어 위절제 수술을 해야 했는데, 한국이라면 아마 대부분의 수의사가 하는 수술일 테지만 미국에서는 응급실이나 수술 전문의로 리퍼를 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일반수의사는 하지 않는 수술이다. 여기서도 한국인 수의사들은 수술전문의가 하는 많을 수술을 하면서 병원을 하고 있지만, 미국 출신의 수의사들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걸 싫어하고, 그렇게 안 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스트레스받는 수술을 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파트타임을 하는 병원이나 풀타임으로 일하는 병원이나 중성화 이상의 수술은 다 내 몫이다. 지난주에는 어찌어찌해서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내리 4일간 수술을 하느라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피곤이 몰려왔지만, 내가 남보다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감사하기도 했다.
이 세상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돈을 버는 일은 없다. 돈을 저축하고 투자하지 않으면서 부자가 되는 사람이 없듯이 말이다. 그러니 스트레스는 같이 가야 할 인생의 파트너이다.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가 있는 삶을 즐기기로 했다. 리스크를 피하고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삶보다 리스크를 인생의 도전과제로 여기며 발전하는 삶을 사는 게 더 즐겁다 생각이 든다.
다만 그런 후에 친구들과 맥주에 골뱅이 안주를 먹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미국에 있으면 가장 그리운 것은 사람과 음식이다.
물론 남편이 집에서 정성스러운 한식을 매일 차려주시기는 하지만, 밖에서 먹는 안주가 그립다.
내가 일하는 직장은 일 년에 4주에서 6주간의 휴가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삼 년 후에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루면,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한국에서 실컷 술과 안주를 먹으면 여가를 즐기고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현재의 나의 삶도 매일 즐겁고 감사하다.
자청의 '역행자'에서 말한 대로 자의식 해체를 통해 자신이 깰 수 없다고 생각하는 틀을 깨고, 황농문 교수님의 '몰입'에서처럼 원하고 이루고 싶은 것을 자나 깨나 생각해서 돌파구를 찾는다면 삶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삶을 지속적으로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인생의 해답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