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나의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동복을 챙겨 입고 우리 집 강아지와 산책을 나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무리 화창한 캘리포니아라고 해도 겨울은 아침에 춥다. 한국만큼 눈이 오거나 얼음이 어는 일은 없지만, 창에 성에가 낄 정도의 추위는 된다. 겨울이 오면서 아침에 너무 추워 일단 집을 나서자마자 간단하게 뛰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뛰면 숨이 차 헉헉거리게 되어 잠시라도 추위를 잊게 된다.
이렇게 이십 분 정도 산책을 한 후 강아지의 아침 쾌변을 성취한 뒤, 일을 나갈 준비를 한다.
나는 아침을 먹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임신했을 때는 아침을 대충이라도 챙겨 먹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침에 특별히 배가 고프지도 않고, 속이 비어 있는 것이 더 상쾌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다만 아침에 물 한자은 마시려고 노력하고, 믹스 커피 한잔을 먹고 출근한다.
점점 공복 시의 허기짐이 식후 포만감보다 만족스럽다.
오전의 스케줄은 아침 8시부터 시작되고, 요즘 좀 한가하기는 하지만, 전날 환축들의 혈액검사등을 전화로 고지하고 진료를 보다 보면 점심시간 12시가 되기까지 화장실 한번 가기도 시간이 빠듯하다. 어떤 때는 하루종일 일하고도 화장실은 한 번도 가지 않는 날도 있다. 그렇지만 점심은 집에 와서 먹기에 집에서 화장실을 두세 번 가기도 한다.
오후 한 시에 오후 진료가 시작되면 저녁 5시가 좀 넘으면 대충의 진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간다. 전에는 집에 와서 산책을 했지만, 시간이 빠듯하기도 하고, 그렇게 바로 일과 후 걷고 나면 너무 지친 기분이 들어서 저녁 먹을 때까지는 잠시 휴식시간을 갖거나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 설거지는 언제나 나의 몫이다. 남편이 열심히 저녁을 준비한 대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하고, 배가 부르니 소화도 시킬 겸 내가 자청한 일이다. 작년 여름부터는 저녁을 먹고 남편과 강아지를 데리고 저녁 산책을 삼십 분 정도 가볍게 한다. 남편과 따로 시간 내어 얘기할 시간이 있는 것도 좋고 산책을 하는 것도 좋아 나는 좋아하는 일이지만, 장이 안 좋은 남편은 간간히 아픈 배를 쥐어 잡고 집에 뛰어들어 오기 일쑤다. 그래서 며칠 전 나는 남편에게 "앞으로 저녁을 먹으면 바로 설거지를 할 거고, 그때까지 네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으면 나 혼자 해리랑 걸으러 나갈 거야. 너 기다리다 짜증 내는 거 이제 안 하고 싶다"라고 선언을 했다.
그리고, 집에 와 간단히 핸드폰 앱으로 스페인어 공부를 5분 정도 하고는 씻고 저녁운동을 한다.
나름 부지런히 한다고 하는데도 운동을 끝내면 11시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매일 부족한 잠에 허덕거린다.
그래서 이번주에 시작한 일이 쓸데없이 핸드폰을 보지 말자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일과 후 지치거나, 잠시 시간이 나면 습관적으로 휴대폰의 뉴스를 보거나 유튜브의 동영상을 보는데, 특히 동영상은 보다 보면 이십 분 삼십 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자꾸 이어서 보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쓸데없는 자투리 시간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물론 아주 안 하지는 못했지만, 점심때나 잠시 시간이 났을 때 휴대폰을 보는 대신 책을 보기 시작했다. 매일 조금이라도 책을 봐야지 하지만, 막상 책을 잡게 되지 않고, 그러다 보면 삼, 사일 아예 글자 한자도 보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이런 약간의 일상의 변화가 얼마큼 큰 영향을 주는지는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눈이 좀 덜 피곤하고, 머릿속에 잡생각이 좀 덜 생기는 것 같다는 정도일 뿐이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시간을 팔아 돈으로 바꾸며 사는 삶을 살고 있다. 내 시간당 대가를 올리기 위해 노력했고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나의 시간을 팔아야만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시간을 그냥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새로 아이들이 테니스를 배우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둘째는 한글이 서툴러 한글학교도 보내려고 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가 겹치니 비용이 정말 상당하다. 그래서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당장 이백만 원 정도는 더 지출이 생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든 첫 번째의 생각은 '추가 근무를 잡아서 돈을 더 벌어야겠다'였다. 물론 두 직장에서 일하면서 주 5일을 꼬박 채우고 있는 내 스케줄에 시간을 더 얻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 명절이 다가오면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보내드려야 하는 돈도 생각하면 더 이상은 추가지출을 저축 계좌에서 꺼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어제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저스트 킵 바잉: Just keep buying'책을 읽으면, 최소한 일 년 셀러리(과세 전)의 10-15%를 저축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현재 나의 세이빙은 30%가 넘으니 말이다. 나름 나의 수익률이 높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고, 모든 게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었는데, 오늘 갑자기 우울의 늪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 일은 산책을 나가 한 시간 정도 걷고 마지막에 잠시 뛰었다. 기분이 나아졌고 다시 긍정적인 기분이 들었다. 다음 주 페이첵에는 휴일급여가 추가로 지급될 것 같으니 약간의 추가 수입이 있을 것이고, 이달에 추가적인 지출을 삼간다면 잘하면 저축계좌를 건드리지 않고도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매니저에게 다음 주 하루 주말 추가 근무가 가능하냐고 문자를 넣어 놓기도 했다.
휴대폰을 잠시 들여다보는 오분을 잡으면 쓸데없이 허비되는 삼십 분이 잡히는 것과 비슷하지만 긍정의 오분도 있다. 나는 매일 저녁 스트레칭, 복근운동, 푸시업, 스쾃를 하는데, 특히 팔꿈치혀 펴기는 5년 전 처음 시작할 때 아마도 한 10번이나 15번 정도만 해도 죽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두 번에 나눠서 80번을 한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 도저히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고, 그러다 보니 스트레칭과 복근운동이 끝나면 멍하니 앉아서 십분 이십 분을 티브이를 보며 멍하니 있는 날이 늘어났다. 그래서 70번이라도 그냥 일단 하자 했더니 다시 할 수 있게 되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것도, 하루에 10분은 읽어야지 혹은 이번주까지 이 책을 끝내야지 하면, 아예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몇 주간 지속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냥 잡고 5분이던 10분이던 그냥 읽자 했더니 일주일에 한 권이라도 읽히기 시작했다.
하루의 5분이 무엇에 쓰느냐에 따라 시간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시작이 되기도 하고, 황금 같은 시간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