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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ep 09. 2024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돌아서 생각해 보면, 나는 내 인생을 숙제처럼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초중고를 다닐 때는 학교를 다니며 시험을 보고 어느 이상의 성적을 받는 걸로, 대학을 가서는 결과적으로 국가고시를 치르고 면허를 받는 걸로, 어른으로의 삶이 시작된 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으로 채워갔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조금씩 생활의 균형일 생길 무렵 다시 나는 인생을 숙제를 찾기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몇 년에 걸친 미국 수의사 자격증을 거머쥐고, 미국의 비자를 받게 되었다. 

사실 내가 처음 가고자 했던 나라는 호주였다. 호주는 이민자들을 위한 점수제를 갖고 있는데, 이 과정이 몇 년이 걸리고, 또한 그 몇 년 동안 갑자기 이민법이 바뀌기도 한다. 웃긴 전 점수를 어느 이상 받을 수 있어야 이민 신청이 가능한데, 경력이 쌓여가는 동안 나이점수가 깎인다는 것이다.

결국 어렵게 미국 수의사 면허를 따고 모든 걸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미국행을 결심했다.


인생을 숙제처럼 풀어가던 내가 준비한 이민의 이유는 '인생을 여유롭게 살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경쟁사회에서 아이들을 해방시키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 오니 오히려 더 힘들게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빡빡한 예약스케줄을 소화하며, 하루에 두 마리만 수술이 있어도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서는 열 마리의 수술도 오전에 끝내기도 했다. 

처음에 영어도 버벅대면서 진료를 저녁까지 쉴 새 없이 하는 걸로도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출근하면서 드는 허망한 느낌을 채우기가 어려워졌다. 

다시 숙제를 배급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한국인이 잘하는 것 중 하나라면, 남들 하는 건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험을 볼 때도 가능한 모든 측면을 커버하려고 한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직장인이라면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어찌해서 읽기 시작한 필 타운의 주식책에서 얘기한 투자에 관한 생각들도 들어오기 시작했기도 하고 말이다. 직장인에 한다는 직장연금, 의료보험 저축계좌, 개인연금을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에 온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신용점수도 부족해 꿈도 못 꾸던 주택구입도 본격적으로 알아봤고, 두 디어 이 년 전에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시작한 숙제.

이십 년 모기지를 빌린 집의 모기지를 5년 안에 갚자는 나로서도 너무 과하디 싶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처음에서 정말 말도 안 되는 계획 같았는데, 말도 안 될 것 같은 25% 프로 셀러리 인상을 하게 되니, 이게 아예 말이 안 되는 일이 아니고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3년만 미친 듯이 절약해서 이뤄보자'는 생각으로 스타벅스의 커피마저 아까워 사 먹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로 정해놓고 매일 리마인드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마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금연'도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흡연자들 99프로는 금연을 꿈꾸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는 담배도 미국에 비한다면 1/4 가격에 불과하고, 집 앞 편의점만 가면 24 내내 구매가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10분 이상 운전을 해야 편의점이든 스모크 샵이든 찾을 수가 있고, 가격도 엄청나다. 그런 샵도 저녁 8시에는 문을 닫는다. 

미국의 주에 따라서는 흡연자들의 보험료는 할증이 붙는다. 그나마 여러 면에서 자유로운 캘리포니아는 그런 할증을 금지하곤 있지만,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보험회사인 카이저는 얼마간의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 그러면서 '네가 금연의 의지를 보이고 노력한 흔적인 있다면 돌려주겠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미국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나의 건강을 돈과 함께 싸잡아 버리는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금연을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다'라는 말을 통감하며, 내가 인생을 숙제를 묵묵히 완성해 가면서 시간을 보낸 친구하나(?)를 떠나보냈다. 

중독의 후유증인지 내가 스스로 조이면서 사는 숙제 같은 인생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다시 우울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즐거운지 알 수가 없다고나 할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필요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유튜브에 최근 작가와 강연가로 활동하는 개그맨 출신 '고명환'씨의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에게 삶의 해답을 찾는 방법은 '책을 읽은 것이라'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다시 집어든 책이 에리히 프롬의 '소유나 존재냐'였다. 사실 나는 철학이나 사상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지만, 내가 존경하는 세이노 작가의 추천 리스트에 있을 책들을 샀고, 이도 그중 하나였는데, 처음에 몇 장 있다가 이게 도대체 한국말인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서 그만둔 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시 읽게 된 이 책을 나에게 전혀 다른 책으로 다가왔다. 물론 아직도 몇 번을 다시 읽어야 할 만큼 어려운 말들이지만, 이젠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작가는 삶의 여러 가지 부분을(인생, 직장, 공부, 인간관계, 종교 등) 소유로 받아들이는지 존재로 인정하는지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다. 




고단한 하루가 끝나고 멍하니 핸드폰을 만지며 유튜브나 연예인에 대한 가십을 읽으며 멍하게 있다 보면 어느덧 삼십 분 혹은 한 시간이 지나 있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며, 머리는 멍해지고 허탈해진다. 피곤해서 잠시 쉬고 싶었다는 변명을 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멍하게 유튜브를 본다고 해서 우리의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수동적이고 비생산적인 생각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피곤해서 책을 읽기 싫다는 얘기는, 사실은 나를 정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온전하게 삶을 누리고, 오늘도 즐겁게 살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면 그건 나와 대화하는 내가 존재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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