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얘기갔지만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원칙을 갖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각자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한국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할때, 때때로 사람들의 자신의 편의에 의한 요구를 종종 받곤했다.
예를 들면, 몇년전에 한동한 진료를 받던 한 고양이의 주인은 자신의 고양이가 최근 다른 병원에서 방광결석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해야하는데, 보험혜택을 받기위해 우리병원에서 했던 과거 진료기록을 바꿔달라는 요구였다. 한동안 좋은 고객이었기에, 이 무례한 요구를 정중히 거절하기 위해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또 한 보호자는, 자신의 고양이 중성화 수술비가 다른 병원에 비해 비싸니 그 병원과 가격을 맞춰주면 우리 명원에서 수술하고 싶다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물론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부탁이었을지 모르지만,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부탁임에도 잠깐은 고민이 들기도 하는 일이기도 했다.
최근 한국의 모 방송사에서 하는 pd수첩을 접하고, 자신이 누리는 모든 혜택을 소비자의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을 하게되었다. 요즘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학교 교사들에 대한 학부모들의 과도한 요구와 심지어는 언어적 신체적 폭행은 도가 지나칠 정도이다.
물론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사들에 대한 학부모들의 처우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내가 문제로 보는 것은, 한국은 기본적인 원칙이 상황에 따라, 상대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목소리가 크면 혹은 크게 분란을 일으키면 일으킬수록 그들의 요청은 더 쉽게 들어준다.
어떤 식으로 요구를 하든, 안되는 일은 안되는 일이어야 한다. 원칙대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알던 한 친구의 아이는 학교에서 교사에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일을 당했는데도, 학교에서 문제를 덮고 쉬쉬하면서 정당하게 문제해결을 요구하던 친구에 오히려 '과도한 학부모의 요구'란 타이틀을 붙었고, 결국 그 친구는 그 일 이후 아이들과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공평하게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원칙이 지켜져 좀 덜 억울해진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미국은 이번 대선 결과로 들썩들썩하고 있다. 주변의 이민자들은 이민법 개정이 되어 멀쩡한 사람이 쫓겨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마치 과거에 흑인은 백인과 같이 학교를 다닐수도 화장실을 공유할수도 없었던 시절처럼, 모든 낙태법을 금지하고 심지어는 질병이나 사고에 대한 유산조차도 처벌을 받을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의 두번째 대통령인 된 사람은 리얼리티 쇼의 쇼 호스트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의 비열한 속마음을 대변해주며 인기를 얻고있다.
요즘의 드라마 트렌드는 흔한 사랑얘기보다 법이 처벌할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 처벌해주는 개인 복수극이 더 큰 인기를 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조용하게 정의를 바라며 살고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대신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 산책을 다녀온 후 유난히 옆에서서 무언가를 바라던 우리집 강아지의 물그릇이 비어있는 걸 보고 급히 물의 채워 주었더니, 허겁지겁 물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 개의 엉덩이를 토닥거려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항상 큰 눈으로 가족들을 살피며 주변 어딘가에서 말없이 누워있는 우리집 막내이다.
사람들이 동물을 키우는 건, 그들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판단하지 않고 항상 우리편이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들의 사람에 대한 무한애정을 얕은 인간들이 따라갈수 없겠지만, 최소한의 버팀목이 서로 되어줄수는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