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어르신들이 키우는 개들은 대체로 얌전하다. 이제 일 년도 안된 크림색 리트리버 '하퍼'는 어르신들 부부와 내원한 지 8개월 정도가 되어간다. 원래 리트리버가 사람을 잘 따르고 순한 견종이기는 한데, 이 아이는 처음부터 얌전하고 순했다.
6개월도 되기 전에 제3 안검의 염증으로 생기는 '체리아이: 안쪽 결막이 빨갛게 부풀어 외부적으로 돌출되는'가 생겨, 몇 달 전에 중성화와 양쪽의 체리아이를 수술한 아이다.
처음에는 회복이 늦어 걱정했는데, 한 두 달이 지나가니 거의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노부부는 내가 사는 동네에 사시기에, 가끔 차로 지나가며 할머니와 하퍼가 산책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어린 강아지가 뛰고 점프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고, 할머니와 얌전히 걸어 다닌다.
수의사들은 보호자들의 성향이 자신들이 키우는 개들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익히 알고 있다. 아이들과 같이 크는 강아지들은 아이들이 개들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정말 순하고 얌전하기도, 혹은 미쳐 날뛰는(?) 경우도 본다.
얼마 전 있는 3살 정도 되는 큰 개 '찰리'의 뒷발 며느리발톱의 발톱을 사나운 성격으로 주인들이 깎지 못해 매번 길어져 살을 파고들자, 결국 제거수술을 결정해서 하게 되었다. 젊은 부부와 10살 정도의 어린 딸이 있는 집이었는데,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사납긴 해도 처치실에서 나름 심장사상충 검사와 백신도 할 수 있을 정도가 올해 수술할 때는 정말 진정주사를 놓기 전까지 손조차 댈 수 없을 정도로 사납고 저항이 심한 상태가 되었다.
보호자들은 개의 발톱을 깎다 물리기 일쑤여서, 결국은 수술을 결정하게 되었다.
내 경험상 고양이들은 대체로 8주 이전의 사회화와 교육으로 한번 성격이 정해지면 크게 바뀌지 않는데, 개들은 대체적으로는 주변의 상황이나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생명체는 심지어 식물까지도 감정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듣지만, 특히 개들은 더 확실하게 감정을 표현한다.
기본적으로 위의 경우처럼, '하퍼'는 기본 성향이 순한 개이긴 했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어른들과 생활하며 그 성향이 더 강해졌고, '찰리'는 원래 의심이 많고 자기 보호본능이 강한 성격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 자신이 저항하고 입질을 하면 자신의 의사가 관철되었기에 점점 더 사나워지며 자신을 보호하는 성향을 키워나간 것이다.
가끔 병원에서 크고 사나운 개들과 씨름을 한 날이면, 집에서 우리 집 순딩이 해리를 껴안고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이제 우리 가족과 생활한 지 이년이 지나간 두 살 반 리트리버 잡종인 해리는 전반적으로 게으르고 착하다. 집에 온 첫날부터 코를 골며 잠을 잤고, 누워 있을 때 부르거나 손을 달라고 하면, 귀찮아하며 눈만 움직이기도 한다.
처음부터 산책 후에는 철저하게 발을 닦아주고 관리를 시켰더니, 이제는 발을 닦던, 발톱을 깎던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평소에는 무진장 예뻐해 주고 상호 간의 신뢰가 형성되어, 병원에 데려가 주사를 맞거나 피를 뽑을 때도 나 혼자서도 가능하다.
물론 모든 것이 기존의 성격과 환경 그리고 교육이 합쳐져서 나오는 것이기에 절대적이지는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개들이 낯설고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에서 사람을 믿고 따르는 것과 공격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환경과 교육의 힘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도 '성선론'과 '성악론'의 의견차가 분분한 것처럼, 가끔 개들에게서도 모호한 상황들이 있기는 하다. 다만 개들에게도 감정이 있고, 그들의 감정을 존중하며 적절한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일 뿐이다.
이제 중학생이 된 둘째 딸은 나를 닮아 평화주의자(?)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있을 때 누군가 서로 티격거리 거나 말싸움을 하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항상 과도히 명랑하고 밥을 먹을 때던 심심할 때건 상관없이 이상한 춤을 추며 낄낄거린다.
살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즐겁게 살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병원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 중에 베트남 이민자 출신의 부모를 가진 삼십 대 초반의 사람이 있다. 분명히 똑똑하고 일도 잘하는데, 인간관계과 서툴러 게임을 하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결국의 캐나다에 사는 한 남자와 교류하다 두 번의 캐나다 여행 후 그와 서둘러 결혼을 했다.
그녀는 임대 아파트에서, 엄마와 이혼한 아빠와 그 새 부인, 그리고 삼십 대 중반에 한 번도 직업을 가진 적이 없는 오빠와 같이 생활한다. 한국적이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미국이니깐 그럴 수도 있는 건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환경을 벋어나고 싶어서인지 결혼한 남자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가고 싶어 하는데, 결혼 후 이 년간 상황의 진척이 없다. 그 남편이라는 사람도 무직이라 여권조차 발급받지 못한 상태이기도 하다.
누가 봐도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지만, 그 직원은 그 남자를 너무 사랑하고 그를 만나서 일 년에 서너 번은 캐나다를 오가는 상태이다.
뭐 그렇다 한들, 서로 사랑하고 즐거우면 그만이지 싶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툭하면 트러블이 생기고 일하는 내내 정신이 실종된 우중충한 직원의 얼굴이 맞닥뜨리곤 한다.
그 백수 남편의 '가스라이팅' 때문이다. 그 친구가 친구를 만나거나 술한자 하는 것조차 그를 사랑하지 않아 하는 나쁜 행동으로 만들어 이제는 그나마 있는 친구도 잘 안 만나며, 전에 만난 남자들 관계도 일일이 문제 삼으며 그 직원을 통제한다.
지난주에는 일주일 내내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며 일하는 내내 전화기를 붙들고 문자를 하고 있어, 일 자체에 방해가 되는 상황이 되곤 했다.
그 직원의 상황이 안쓰러우면서도 같이 일하는 상황에 짜증이 밀려왔다.
'이제 무엇을 보던 무시하고 나의 일에 전념을 다하자'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려본다.
다음 주는 미국의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이 있다. 간만의 휴가를 즐기며 남편과 소주 한잔을 걸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