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이유로

착한사람이 끌어가는 세상

by 퇴근길 사색가

나는 종종 ‘착하다’는 말을 듣는다. 어린시절에는 굉장히 많이들었고, 커서도 종종 듣곤 한다. 처음엔 그 말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설명하는 좋은 형용사처럼 여겨졌다. 누군가에게 배려를 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 애쓰는 성향이니, 착하다는 평가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그 말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착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불편해지는 순간이 있다.

나의 양보가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내 시간을 쓰는 것이 마치 권리인 듯 요구될 때가 있다. 처음에는 그저 한 번 도와주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반복되다 보면 의문이 생긴다. “혹시 나를 이용하는 건 아닐까?” 그 순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내 호의를 무기로 바꾸는 듯한 상황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웃으며 넘어갈 수가 없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작은 부탁이 쌓이고, 결국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까지 떠맡게 되었다. 참다 못해 화를 냈다. 목소리를 높이고, 속내를 드러냈다. “내 착함을 이용하지 마라”는 외침이 내 마음 속에서 터져 나왔다. 순간은 후련했지만, 곧 뒤따라온 건 이상한 불편함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상황이 급했거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거나, 어쩌면 그들 또한 나처럼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은 여전히 차갑게 식지 않았다. 화는 가라앉지 않고, 찜찜한 기운만 남았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착하다’는 건 결코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원해서 베푸는 호의와, 억지로 빼앗기는 희생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나를 자유롭게 하지만, 후자는 나를 옭아맨다. 자유롭게 베풀 때는 기쁨이 남지만, 빼앗기듯 줄 때는 억울함만이 쌓인다. 결국 오늘 내가 느낀 불편함은, 나의 착함이 자유가 아니라 억압으로 변질되는 순간 생겨난 감정이었다.


생각해보면, 착한 사람은 세상에 꼭 필요하다. 착함이 없으면 사회는 거칠어지고,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멀어질 것이다. 하지만 착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또 다른 힘이 필요하다. 바로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다. 자기 경계를 분명히 세우지 못하면, 착함은 미덕이 아니라 약점으로 소비된다.


오늘 나는 화를 내고, 후회했고, 이해하려 애쓰다가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착하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착함을 진짜 나의 것으로 지키려면, 때로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거절은 착함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착함을 오래 지켜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착함에도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힘은,

나를 단단하게 세우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