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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스young Sep 17. 2023

나의 친구 드라마

집순이의 친구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집순이의 경우에는 더 좁은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하지만 좁은 인간관계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것이 집순이의 특징이다.


회사에서의 관계는 절대 사적인 관계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으나 최대한 그 중간 어디쯤을 지키려고 했다.

거의 1인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기에 많은 관계를 맺지 않았고 단지 고객을 위해 가면을 쓰고 일을 했었다.

그런 내가 퇴근을 하면 가장 먼저 찾는 친구가 있었다. 그건 바로 네모 반듯하고 내가 누르는 숫자에 맞춰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TV였다.


TV 프로그램 중에서도 나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바로 드라마였다.

왜 하필 드라마일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드라마 속의 모든 장치들을 나의 일상과 섞으며 놀고 있었다.

이 얼마나 생각만 해도 신기하고 두근거리는 경험인가?




그럼 나는 과연 어떤 경험들을 했을까?


첫 번째, 사극을 통한 역사공부 시간을 보냈다. 분명히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는 사실을 바탕에 재미가 가미되어 있기에 모든 것을 다 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사극 속의 멋진 왕들의 모습 내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을 더 빛나게 하고 멋있는 왕들의 모습에 여전히 현기증을 느낀다.(특히나 정조나 철종이 나오는 드라마는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신데렐라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 드라마 속에는 다양한 남자주인공들의 나온다. 그 남자 주인공들은 나의 상상력 속의 모두 내 남자친구가 되었다. 주인공들의 대화 하나하나에 미소가 지어지고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괜스레 떨리게 된다. 이런 나의 모습을 남편은 옆에서 거의 반 포기 상태로 지켜보곤 했다. 그래도 좋다. 헤벌레 하는 아줌마의 미소이지만 나의 머릿속에서는 우리나라 모든 남자 연예인들과 연애를 했었다.


세 번째, 눈물흘려서 마음속 응어리를 풀었다. 소심하고  남에게 싫은 말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의 나는 남에게 어떤 말을 들으면 마음에 담아두고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면 어느 순간 엄청난 돌덩어리가 마음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 밤새도록 슬픈 드라마는 본다. 미친 듯이 눈물을 흘리고 나면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지고 돌덩어리는 한층 작아져있다. 왠지 슬픈 드라마를 봐야 할 듯한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네 번째, 나도 약간의 정의로움이 있는 듯하다. 범죄 드라마, 특히 외국의 형사물 드라마 시리즈는 빠지지 않게 보게 된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걸 믿기에 드라마 속 범죄 이야기를 집중해서 보고 나만의 추리를 하기 한다. 올해는 아주 재미있었던 복수드라마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 소심함 나에게도 마음 한편에는 우리 사회가 안전하고 안정적이고 정의롭길 바라는 듯하다.


다섯 번째, 나의 두 아이를 위해서 공부하는 엄마가 되고 있다. 요즘에는 육아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나오고 있다. 육아에는 답이 없기에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엄마들과의 영양가 없는 대화보다는 조금 더 객관적이기에 드라마는 아니지만 육아 프로그램에 이입이 되어 연습을 하게 된다.




이렇듯 나는 오늘도 드라마 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멋있는 남자 주인공의 대사에 나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심장은 팔딱팔딱 뛰며 죽어있는 연애세포에 잠시나마 설렘을 주입해 주었다.


[ 난 낭자의 종이 될 테요.

내 몸도 낭자의 것, 내 마음도 낭자의 것,

내 심장도 낭자의 것.  

- "인연"- 10화 중 ]


눈으로도 연기한다는 배우의 명대사에 잠시 심장을 부여잡고 추스른 후 돌린 나의 시선에는 빨래를 정리하라는 남편의 눈초리가 느껴졌다. 그 순간, 현실로 돌아와야 하지만  얼른 다시 드라마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또 주어진 일을 하고 있다.


오늘은 또 어떤 세계로 놀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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