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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스young Sep 26. 2023

나라의 녹봉을 받자!

군무원 4년 도전기

나는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24살부터 39살까지 영양사로 근무했다. 

둘째 아이 출산휴가로 육아 중이던 30대 중반, 항상 생각해 두었던 점을 남편에게 말해보았다.


"오빠, 나 공부할까요?"

"무슨 공부?"

"내 전공을 살릴 수도 있고 나의 최종 목표였던 나라의 녹봉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뭔데?"

"군무원 도전!!!"


군무원이라는 직군은 대학교 4학년 때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T.O. 가 많지도 않았고 영양사를 할 생각이 없었던 탓에 도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나라의 녹봉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아마도 나의 미래가 안정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태어난 아이가 6개월 정도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가장 먼저 준비해야 했던 것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과 공인 영어 점수였다. 나는 항상 비용은 최소로 하고 싶은 생각이 컸기에 독학으로 준비했고 운이 좋았는지 한 번에 한국사는 심화 3급, 지텔프 44점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번 점수를 받아 놓으면 그 당시 2년 동안에는 점수가 인정이 되었기에 기뻤고 머리가 녹슬지 않았다는 것에 스스로 쓰담쓰담해 주었다.


하지만 작은 산 하나를 넘은 것뿐이었기에 본격적으로 국어와 전공 2과목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국어는 일전에 9급 공무원 공부를 한다면서(많은 도전이 있었네요 ㅎㅎ) 해두었던 기본이 있다 보니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전공책을 놓은 지 10년 이상이 지났기에 전공 공부가 나의 발목을 잡았다.


실질적인 영양사 업무를 하면서 대학시절 공부했던 이론들은 하나도 정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론 공부는 단지 영양사면허를 따기 위해서 했던 것이었구나는 인턴 6개월 동안 뼈저리게 느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전공 이론들을 다시 시작하려니 엄청난 고난이 찾아왔다. 방대한 양들은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까마득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의 공부를 하면서 둘째 아이는 돌쟁이 아기가 되었고 첫 번째 군무원 공채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두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시험을 보러 새벽같이 달려간 청주의 공군사관학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험장을 들어서는데 정말 앳된 수험생들이 많았다. 순간 난 저 때 무얼 했지? 이렇게 다양한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좁은 눈으로 바라보며 지나친 시간들이 정말 아쉬웠다. 그런 마음으로 치른 첫 번째 필기시험,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6개월 밖에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실망도 하지 않았다.


다시 도전을 위해 마음을 다 잡았고 하반기에 있던 무시험 경력직 특채에 도전하게 되었다. 며칠 밤을 새우며 작성했던 자기소개서와 경력증명서, 직무계획서등의 서류가 합격하였다는 말에 신랑을 껴안고 만세를 불렀다. 나름 취직 때 4차까지 면접을 봐왔던 경험이 있어서 면접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뀐 국기에 대한 경례도 큰 소리로 외웠고 영양사로서의 사명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나의 경험들을 큰 소리로 연습을 했다. 

그렇게 짧게만 느껴진 한 달의 연습을 마치고 몇 년 만에 입어 어색한 정장차림의 나는 계룡으로 향했다. 청심환을 원샷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는 개인발표를 위해서 논술문을 작성하고 면접위원 4명 앞에 섰다.


세상 그렇게 떤 적이 있었을까? 집순이에 새가슴을 가진 나는 결국 사시나무 떨듯이 첫 면접을 마쳤다. 당연히 불합격! 




면접을 보고 느낀 것은 나의 내면이 아주 약한 걸 알게 되었다. 

나를 쳐다보는 4명의 눈동자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덜덜덜 떨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던 면접위원들의 모습에 다 자란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아직도 아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신랑의 위로에도 마음이 쉬이 다시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 마음을 가다듬었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2번의 시험을 보았고 필기 합격은 했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다. 나름 내면을 다진다고 했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4년의 시간을 보냈고 지금은 잠시 쉬고 있다. 

나의 최종 목표인 나라의 녹봉을 받는 것은 사라지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나라의 녹봉을 받고 공무원증을 목에 거는 날이 올 것이다. 난 그날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책장에 꽂혀있는 수험서를 만져보고 있다.


정년이 되기 전에 꼭 나라의 녹봉을 받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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