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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숨자 Dec 24. 2022

70c


 70C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엄마가 중학생이 되자 속옷은 갖춰 입어야 한다며 백화점에 데려갔다. 비너스 매장에서 나의 가슴은 직원을 놀라게 하고 말았다. 몸은 말랐는데 가슴만 컸기 때문이다. 70C 그것은 나의 가슴 사이즈이다. 처음 사이즈를 쟀을 때 직원이 65d로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지금은 가슴도 처지고 여기저기 군살이 붙어서 옛날만큼 완벽하지는 않다. 그래도 거울에 비친 나의 상체는 여전히 조각해놓은 듯 아름답다. 그에 비해 하체는 내가 봐도 좀 아쉽다. 엉덩이는 펑퍼짐하게 크고 허벅지는 두껍다. 그래도 허벅지가 두꺼운 사람이 오래 산다고 했다. 무엇보다 다리가 길지는 않다. 그래도 비율은 괜찮은 편이다. 커다란 엉덩이 덕분에 안 그래도 날씬한 허리가 더 가늘어 보인다. 교복을 맞추러 간 교복집에서 사장님이 교복 장사를 23년 하는 동안에 본 허리 중에 가장 가늘다고 했다. 우리 집에는 전신거울이 없어서 전신거울이 있는 친구집에 가면 속옷만 입고 한참을 거울 앞에 서 있었다. 특히 탐스럽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솟아오른 가슴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이것이 나만의 의견인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목욕탕을 가면 다들 내 가슴에 감탄했다. 가슴 크기뿐만이 아니라 유두는 깜찍하고 빛깔도 앵두 같다. 그러므로 나는 벗었을 때 가장 예쁜데 이 모습을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다 벗고 걸어 다니면 공연음란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이타닉에서 로즈를 그려준 잭처럼 나를 그려줄 잭이 있었으면 했다. 나는 주체적인 여자니까 누드모델이 되어 잭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또한 한창 사랑하던 작가 진리스가 누드모델 등을 하면서 어렵게 살다 죽었다길래 누드모델이 몹시 낭만적인 직업으로 느껴졌다. 나도 마침 어렵게 살고 있었다.


 처음 알몸으로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별로 부끄럽지도 않고 아무 감흥이 없었다. 내가 알몸으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니자 모델협회원장이 포즈를 하지 않을 때는 가운 좀 여미고 다니라고 충고했다. 어차피 이미 봤거나 볼 사이인데 뭐 어떤가 싶었지만 그게 또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전면에 거울이 있어 내 몸이 구석 구석 훤히 비쳐졌다. 그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선곡하고 알몸으로 갖가지 포즈를 취했다. 음악은 물랑루즈를 자주 틀었다. 내가 공연하고 있다는 기분을 낼 요량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일은 영화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인체를 그리는 연습을 하려고 모인 10여 명의 미술학도들이 나의 알몸을 열심히 보면서 그리고 있었다. 잭이고 나발이고 다음 포즈를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몸을 쓸 줄 모르고 자세도 반듯하지 않은 나는 가만히 서있는 것도 힘들었다. 어려운 포즈라도 할라치면 다리가 후들거렸고 창의성 부족으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같은 포즈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좀 편해 보겠다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면 미래의 화가 선생들이 서 있는 포즈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모델 표정이 너무 우울해 보인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육체적으로 힘이 들어서 그랬다. 이렇게 실력이 없다 보니 모델 의뢰도 드문드문 들어왔다. 그것도 갑작스레 일이 들어오곤 했다. 모델이 펑크나면 땜빵용으로 나를 쓰는 듯했다. 그렇지만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나의 몸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고 돈도 약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매 예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처음 누드모델을 지원했을 때 누드모델협회 원장이 모델 경력이 1년을 넘어가면 모델료를 올려준다고 했다. 그런데 몇 번 해보지도 않고 코로나가 터져서 나의 누드모델 생활은 자연스레 끝났다.


 슴부심으로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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