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2월 어느 날
벌써 오래전 일이다.
우리 가족은 1985년 즈음에는 논현동에 살았었다. 또 머지않은 반포에는 막내 이모가 살았다. 말 그대로 엄마의 막내 동생이었다. 그즈음의 우리에게 막내 이모는 동화 속에 나오는 친절하고 멋진 귀족 같은 느낌이었다. 일찌감치 젊은 나이에 사업으로 성공한 이모부 덕에 이모네는 늘 외국서 들어온 신기한 물건들로 넘쳐 났었고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오디오와 스피커 등은 우리에겐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이맘 때쯤 멋지게 마루 한편을 장식했던 크리스마스트리였다. 그때 막내 이모네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지금의 여느 트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멋지고 세련됬었다.
그런 이모 집에 우리는 자주 갔었다. 거리상으로도 가까웠지만 엄마는 이모네 자주 가셔서 청소나 집안 정리 등을 자주 도와주셨다. 막내로 자란 이모는 어설픈 살림으로 엄마와 다른 이모들에게서 자주 핀잔을 들었다. 주로 왜 이렇게 청소를 안 하냐, 왜 먹지도 않을 거를 왜 이리 많이 사냐 등의 보통은 엄마들이 시집간 딸에게 하는 그런 류의 잔소리였다. 엄마는 그런 이모네에 자주 가서 청소도 해주고 냉장고 정리도 하고 그랬다. 또 다른 이유로는 넉넉지 않던 살림을 꾸려나가던 엄마로선 그런 일을 해주고 이모에게서 얼마의 돈을 받는 것 같았다. 돈뿐 아니라 넘쳐나는 식재료 등을 못 먹게 되기 전에 가져올 수 있는 보너스도 있었다.
그날도 12월 이 맘 때쯤인 거 같다. 나와 엄마는 주말 아침 막내 이모네로 향했다.
"우와, 이모 또 트리 했네요!"
"지훈이도 왔구나. 성탄절 얼마 안 남았잖아"
이모는 환하게 웃어주며 우리를 맞았다. 엄마는 트리는 보는 둥 마는 둥 부엌으로 향하고 나는 반짝이는 트리 앞에 앉았다. 엄마는 다시 이모에게 넌 왜 다 먹지도 못할 거를 이리 많이 사서 다 썩히냐, 바닥을 얼마나 안 닦음 이리 끈적이냐는 등 몰아치는 잔소리와 함께 팔을 걷어 부치고 집안 정리에 나섰다. 엄마의 그런 잔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이모는 트리 앞에 넋 놓고 있는 내게 과자와 음료를 내왔다. 꼭 외국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요즘도 흔치 않은 유리로 된 장식들과 반짝이는 전구로 화려했던 트리 앞에서 과자와 따듯한 코코아를 먹던 내 모습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때 눈이 오기 시작했다. 정말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이었다. 외국 영화나 연말에 은행에서 나눠주던 달력의 12월 풍경 같은 모습. 눈이 오는 창 밖을 보며 엄마의 근심 걱정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아니 갈 때 얼마나 차가 막히려고 저리 눈이 온다냐."
"멀지도 않은데 언니 뭐가 걱정이야~"
"야, 막힐 때는 한 시간 걸릴 때도 있어"
대충 정리가 끝나고 커피 한잔 마시며 한숨 돌리던 엄마는 저녁 먹고 가라는 이모의 말을 무시한 채 어서 나갈 준비를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 그때 나는 그 공간을 떠나기가 서운했다. 반짝이는 트리와 푹신한 카펫, 창 밖 너머 내리는 굵은 눈발, 내가 꿈꾸던 12월의 풍경에서 벗어나기 싫었다. 트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를 엄마는 무심코 지켜보다가 엄마도 한 미디 했다.
" 참 이쁘다"
나갈 때가 돼서야 엄마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이쁘단 생각이 들었나 보다.
이모네 집을 나오니 엄마의 예측은 맞았다. 씨알 굵은 함박눈은 차곡차곡 쌓여 갔고 차와 사람 모두 엉금엉금 북새통이었다. 지금도 엄청 막히는 길이지만 반포에서 터미널을 지나 논현동에 이르는 길은 그 당시에도 늘 막히는 상습 체증지역이었다. 고속 터미널을 지나기 직전 대뜸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지훈아, 우리도 크리스마스트리 하까?"
갑작스러운 엄마의 말에 나는 갑자기 어리둥절했다
"트리 하자고?"
"이번에 내리자"
갑자기 내리자는 말에 엄마와 나는 고속터미널에서 내렸다. 고속터미널은 꽃, 의류, 인테리어 소품 등들 파는 지하상가가 있었다. 그런 가게들이 연말에는 크리스마스트리와 각종 장식품을 팔기도 했다.
"엄마 갑자기 무슨 트리를 해?"
따라 내리긴 했지만 갑자기 트리를 만들자는 엄마의 모습은 뜻밖이었다.
지하상가로 내려가니 늘 그랬지만 연말인지라 더더욱 북새통이었고 크리스마스트리를 파는 가게들도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몇몇 가게를 둘러보고 가격도 물어보고 하던 엄마는
"저거 어떠니?"
"저걸 사자고?"
평소에도 돈천원에 벌벌 떨던 엄마가 가리킨 크리스마스트리는 내가 생각한 예상을 뛰어넘어 훨씬 크고 멋진 트리였다. 평소와는 반대로 오히려 내가 말했다.
"엄마, 저거 너무 비싸 그리고 저거 우리 집에 놓기엔 너무 큰 거 아냐?"
난 저 트리가 우리 집에 가면 잘 어울릴 거 같은 확신이 서질 않았다.
"한번 사면 평생 쓸 거 아냐. 넌 별로야?"
"아니 멋진데 너무 비싼 거 같아서.."
엄마는 지갑을 열어 그 큼직 막 한 트리를 샀다. 그리고 그와 맞는 장식품과 전구도 인파들을 헤치며 여기저기서 샀다. 뜻밖의 엄마의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 많은 인파 틈에서 엄마는 나를 몇 번이나 쳐다보며 행복해하시는 것 같았다.
그날의 기억은 이렇게 수십 년이 흘러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큰 트리를 버스를 타고 집에 힘들게 들고 와 마루 한 구석에 세우고 전구를 켰을 때의 기억 또한 생생하다.
그 눈 내리던 날 엄마는 왜 갑자기 터미널에서 트리를 사자고 내리자 하셨을까?
빠듯한 살림에 동생네 가서 일해주고 얼마의 돈을 받던 엄마에게 크리스마스트리는 어찌 보면 사치였을텐데 말이다. 트리를 넋 놓고 바라보던 아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건지, 그냥 우리도 크리스마스트리 하나 정돈 멋지게 해 보자는 오기였는지 모르겠다. 세월이 흘러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자며 나를 잡아끌던 엄마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 즈음이다.
그때의 트리는 지금도 있다. 오랫동안 우리의 크리스마를 빛내던 그 멋진 트리는 나와 여동생이 결혼한 후 엄마네 집에 한동안 묵혀 있다가 우리 집을 거쳐 동생네서 다시 부활했다. 며칠 전 동생이 트리를 했다며 SNS에 사진을 올렸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대부분의 장식품과 전구도 그날 엄마와 샀거나 막내 이모가 보태준 그때의 장식들이다.
이젠 나도 그날의 엄마의 감정을 이해할 만한 나이가 돼버렸고 크리스마스라고 그 시절처럼 설레거나 하지 않지만 1985년, 눈 내리는 버스 안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자고 갑자기 나를 잡아끌던 그 시절 엄마와의 추억은 여전히 저 트리의 불빛처럼 따스하게 빛난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