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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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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Jun 07. 2021

대놓고 물건을 파는 방송이 있다?! 뿌슝빠슝뿌슝

심폐소생 프로젝트 <폐업요정> 리뷰

“면이 톡톡~해요. 이게 단돈 8000원!”

“여러분, 이거 진짜 있을 때 가져가셔야 해요.”

“3분 남았어! 이거 안 사면 안 돼. 말도 안 되는 가격이야!”     


‘홈쇼핑인가?’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멘트들이 잔뜩 격앙된 어조에 실려 흘러나온다.


사실 우리는 TV프로그램을 볼 때 뭔가 상업적인 냄새가 나는 걸 싫어한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의 맥락에 맞춰 슬쩍슬쩍 끼워 넣어지는 PPL도 귀신같이 골라내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로 인식한다. 그런데 스튜디오에 아예 사장님까지 모셔놓고 판매를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니! 심폐소생 프로젝트 <폐업요정>(이하 <폐업요정>), 대체 뭘 하는 프로그램일까?     


<폐업요정>은 거리두기로 인해 죽어가는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라이브 커머스로 사장님들의 재고를 판매하는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은 편안하게 안방에 앉아,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마음에 드는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판치는 요즘 보기 드문 훈훈함으로 숨구멍이 되어주는 프로그램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이 전체적인 컨셉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폐업요정>의 유튜브 클립 댓글에서 꽤 날선 비판을 마주했다. 동정심으로 시청률을 끌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자기들은 돈 주고 사지도 않을 물품을 좋다고 팔려는 게 이상하다는 주장에 더해 재미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래서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 프로그램은 정말 재미도 없으면서 ‘동정심’만을 자극하려고 하고 있나?     


사실 댓글 작성자가 왜 <폐업요정>을 동정심만 자극하며 매력 없는 물품을 파는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1화에서는 사장님들의 고충을 중심적으로 조명하다 보니 상품들 자체의 가치가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처분이 ‘급한’ 상품이 무엇이냐고 물어 라이브 커머스에서 판매를 진행할 가방을 고르는 장면도 있었다. 댓글 작성자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안 팔리고 먼지 쌓인 물건을 우리더러 사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하지만 사실 그 속에서도 각각의 가게와 상품들의 가치가 조금씩 드러났다. 이대의 옷 가게 사장님은 특별한 감각과 가게 운영 철학 및 노하우로 21년째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계시며, 동대문의 가방 가게 사장님에게는 보냉 가방이라는 자부심 뿜뿜 시그니처 아이템이 있다. 상품의 가치는 2회에 들어서 더 적극적으로 어필된다. 수제화 가게 사장님은 수제화 경력이 52년 된 명인이시고, 운동복 브랜드 사장님은 출산 후에도 입을 수 있는 운동복을 만들기 위해 3년 동안 연구와 사업 준비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가셨다. 이 분들은 사실 동정심을 얻어 물건을 팔아야 하는 분들이기보다는 코로나19라는, 그들에게 유독 더 가혹한 위기 때문에 응당 받아야 할 주목을 못 받는 분들로 보인다. 우리는 노력에 따른 보상을 아주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가? 이 프로그램은 줄기찬 노력에도 외부적인 요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비추어본 것이라고 이해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시청자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려는 게 목적이었다면, 사장님들을 초대하고 연예인들이 오랜만의 완판을 실현시켜주며 꿈같은 하루를 만들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MBC는 진심이었다. 본격적인 물건 판매 전, 라이브 커머스 전문가들을 초대해 상품에 맞춰진 구체적인 조언들을 듣는다. 연예인의 힘에만 기대는 대신 라이브 커머스라는 플랫폼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준비를 바탕으로 소상공인들을 도울 것이라는 각오가 보인다. 또 <폐업요정>에서는 사장님들이 방송 후에 스스로도 라이브 커머스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촬영 후 3개월 동안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꿈같은 완판이 단 하루만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까지 도와주는 모습이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더해준다.  

<폐업요정> 1회 캡처
<폐업요정> 2회 캡처


결국 <폐업요정>은 절대로, “불쌍하니까 이 분들 하루만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없다. 매일매일 열심히 달리지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도울 방법을 모색하며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정말로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생긴 지 어느덧 1년 5개월을 바라보고 있다. 그동안 방역 실패가 누구의 탓인지 그 의견은 분분했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상공인들에게 전해졌다. 확진자의 수가 올라갈수록 같이 늘어가는 소상공인들의 한숨에 누군가는 소매를 걷어붙여야 했고, MBC가 그 역할을 실험적으로 맡아본 것이다.


아무래도 프로그램의 시작이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보니, 웃음만을 겨냥하고 만든 프로그램보다는 배를 잡게 하는 장면은 나오기 쉽지 않다. ‘핵노잼’이라는 댓글도 그 점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것 같다. 그러나 배를 잡게 하는 장면이 비교적 적다는 것이 곧 예능으로서의 목적을 게을리 실현하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예능은 재미를 줘야 한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재미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재미’의 폭을 약간만 넓혀 바라본다면 예능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말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줄어드는 재고의 수를 보며 기뻐하고, 완판될 것인지 아닐지 함께 마음을 졸이는 과정. 데프콘이 미간을 찌푸리고 침을 튀기며 마지막 재고를 판매하려는 모습, 카메라 앞에서 훌렁훌렁 옷을 갈아입으며 잠재적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안영미와 신봉선까지, 라이브 커머스로 상품을 판매하는 포맷에서만 나올 수 있는 풍경은 굉장히 특이하고 다채롭다. 방송 후 사장님들의 근황에 호기심이 생겨 GRIP 어플을 깔아봤는데, 사장님들이 조금씩 자립적으로 상품 판매를 진행하는 모습을 확인하며 새롭고 묘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폐업요정> 2회 캡처
<폐업요정> 2회 캡처

<폐업요정>은 코로나19로 모두 점점 지쳐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꼭 직시해야 할 문제의식을 가진 프로그램이다. 인적 드문 거리와 망해서 비어 있는 상점들을 비추며, 안전을 위해  집과 학교, 혹은 직장만을 오가며 꼼짝없이 들어앉아있는 사람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풍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언택트 시대에 완벽히 들어맞는 ‘온라인 커머스’라는 방법을 통해 소상공인 한 명 한 명이 고충을 이겨내고 다시 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폐업요정>은 굉장히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며, 준공영방송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하고 싶다.

물론 개인의 시각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려고 나서는 프로그램에 편견을 가지거나 애초부터 웃음만을 겨냥한 프로그램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어느 프로그램이든 자리 잡는 과정이 필요하다. <페업요정>이 정규편성 된다면 시청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분별 있게 받아들이면서 점점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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