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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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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Aug 27. 2021

대2병을 위한 긴급처방, <아무튼 출근!>

  ‘대2병’. 정신없이 놀던 신입생 시절이 지나고, 갑자기 훅 다가온 현실과 미래에 대한 고민에 빠져 방황하는 대학생들의 증상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성적에 맞춰 정한 전공에 대한 확신이 더욱 옅어지고, 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심해지며, 왜 고등학생 때는 진로 고민을 하지 않았는지 후회하기도 한다.

  나는 대학교 4학년이다. 이제는 정말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온 만큼, 친구들을 만나면 하는 이야기 중 8할은 진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자가 꿈꾸는 진로는 다르지만, '대학생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는 앓는 소리에는 이견이 없다. 대학에 가면 끝일 줄 알았던 수험생 시절에 마음이 더 편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진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상태임에도 무언가를 한 단계씩 부지런히 쌓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무겁다. 고시나 전문직, 대기업 등 주변 친구들이 희망하는 바가 몇몇 정해진 갈래들로 나뉘다 보니, 왠지 나도 그중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집, 학교만을 다니며 제한된 직업군만을 접하고, 일반적인 사회적 시선을 내면화하고 살아온 우리에게 다양한 직업을 고려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무튼 출근!>은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접하기 힘들거나 평소에는 별 관심을 모으지 못하는 직업의 모습을 구석구석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진로 고민에 대한 의미 있는 가이드를 얻기도 하는데,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며 개인적으로는 어떤 점을 느꼈는지 말해보고자 한다.          




1. 매몰비용을 두려워하지 말자!


  매몰비용이란 이미 지출된 비용 가운데 선택을 번복해도 회수될 수 없는 만큼의 금액이다. 매몰비용은 마치 엎질러진 물과 같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해 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신이라고 말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투입된 비용이나 노력이 아까워, 마음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곤 한다.

  이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 간절히 바라고 노력해서 따낸 학벌과 전공이 족쇄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 학교의 이 학과에 들어오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이 아깝고, 입학해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며 쌓아온 나름의 무언가가 무의미해지는 게 두려워 방향을 틀기를 지나치게 망설이는 것이다.

  하지만 17회에 나온 파일럿 김연경 씨는 방향을 트는 데 있었던 망설임을 이겨냈다. 카이스트에서 수학을 전공하다 아무 접점도 없던 비행에 갑자기 꿈이 생겨, 미국으로 훌쩍 항공 유학을 떠난 것이다. 대학교에서 열심히 배운 전공 지식은 많이 쓰이지 못했고, 미국에서 조종 면허를 취득하는 데는 전에는 예상치 못했던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김연경 씨는 그런 이유만으로 ‘이제 와서 무슨…’이라며 새로운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푸른 하늘을 사무실로 삼아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또 9회에는 자동차 연구원 박세훈 씨가 나오는데, 이 분은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문과 학생이었지만 자동차 연구원이 되고자 대학교 때 경영학과에서 기계공학과로 전과했다. 그동안 쭉 배워왔던 것을 뒤로하고 새로운 학문을 배워, 그 안에서 경쟁을 하고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는 것은 박세훈 씨에게도 두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로 선택한 박세훈 씨는 설계나 제작에 참여했던 차량이 호평을 들으며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만끽하고 있다. 이 두 명처럼,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아깝다고 해서 새로운 시작을 향한 바람을 도로 묻어버리지 않고 실행에 옮겨보는 과감함이 우리에게도 필요해 보인다.

<아무튼 출근!> 17회(왼), 9회(오) 캡처


2.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다!


  ‘대2병’의 주된 증상들 중 하나는 늘 진로에 대해 고민해도 결국은 답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선택으로 앞으로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끝없이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급여, 워라밸, 전문성, 사회적 지위, 업무 환경 등 고민을 하면 할수록 온갖 요소들이 개입한다. 물론 특정 직업의 이상적인 부분만 보고 무작정 진입하기보다 다양한 측면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과정이다. 하지만 <아무튼 출근!>을 보면, 고민을 거듭해 ‘합리적’으로 선택한 진로여야 ‘잘’ 내린 결정인 것은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8회에 나온 야생동물 수의사 임승호 씨는 애초에 야생동물이 좋아서 수의사를 선택했다. 인간에게 보호와 관리를 받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이 경이롭고 신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임승호 씨에게 야생동물은 ‘운명’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수의사들 중 야생동물 수의사가 수입이 가장 적다는 사실은 그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최대한 오랫동안 현장에서 뛰는 야생동물 수의사로 일하고 싶다는 포부에 그 이유를 물으니, 그는 “재밌으니까요”라는 말 한마디로 대답을 끝낸다. 이처럼 ‘재미있다’는 것은 진로를 선택하고 그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유일하고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10회에는 대기업에서 퇴사해 떡볶이 밀 키트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김강민 씨와 윤홍권 씨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두 분은 평생 직장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뭔가를 해보자’ 싶어 창업을 했다. "자영업자 특유의 푸석한 느낌이 있다"고 놀림받은 이들은 출근한 지 17시간 만에 퇴근한다. 퇴사를 했을 때 직장 동료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놔두고 왜 굳이 모험을 하냐”며 그들을 이상하게 보았고, 그들 역시 망하지는 않을지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처음 1년 동안은 적자를 봤으나, 결과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둘은 주위의 시선, 고된 노동, 높지 않은 성공 가능성에 얽매여 끙끙대기보다는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남들이 놀랄 만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행복해하는 지금의 모습을 보면, 진로 선택의 과정이 단순하다는 것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재고 따지는 과정만이 성공을 보장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출근!>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있고 의지가 확고하다면 일단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은 자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출근!> 8회(왼), 10회(오) 캡처


3. 어떤 직업이든 즐거움과 사명감은 느낄 수 있다!


  <아무튼 출근!>을 보다 보면, 잘 모르는 직업에 대해 속단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특히 8회에 나온 집배원 한창훈 씨를 보기 전에 집배원이라는 직업은 지루하고 단조로운 직업으로만 느껴졌다. 그러나 한창훈 씨는 편지를 전하기 위해 동네를 누비며 계절의 변화나 날씨의 변화를 느끼고, 빈집에서 반겨주는 반려동물들과 즐겁게 놀기도 하며, 택배를 받는 사람들이 고마움을 담아 전하는 커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 또 그는 출근해서 가장 먼저 의식적으로 밝은 미소를 짓는다. 고객들에게 좀 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아무튼 출근!>이 소개한 집배원은 매일 그 특유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집배원만의 사명감을 늘 가슴속에 품고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다.

  비슷한 의미로 2회의 공항철도 기관사 심현민 씨도 기억에 남는다. 출근하자마자 핸드폰 전원을 끄고. 매 역에서 신호를 체크하는 모습에서 승객의 안전을 위해 익숙함을 얼마나 경계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또 심현민 씨는 기관사만이 느끼는 감정과 감상들도 보여준다. 수많은 승객들의 발이 되어준다는 특유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출근 시간 서울역 방면 김포공항 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장면, 눈 오는 날 기관사만 볼 수 있는 장면, 기관실 CCTV에 비치는 사람들의 바쁜 순간과 희로애락의 순간을 볼 수 있음을 자랑한다. 이처럼 <아무튼 출근!>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모든 직업에는 그것만이 가지는 가치와 즐거움이 있으며,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도 직업에 느끼는 만족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아무튼 출근!> 8회(왼), 2회(오) 캡처




  지금까지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아무튼 출근!>이 진로 고민에 주는 의미였다. 하지만 사실 진로 고민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고, 그중 어느 하나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전국의 대2병 환자들에게 <아무튼 출근!>을 직접 보기를 권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야 한다. 따라서 진로 고민은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며, 오히려 먼 길을 돌아가지 않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고민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급하게 마무리 지으려 하는 대신 여유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며, 그렇게 천천히 고민해보는 과정에서 <아무튼 출근!>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해당 프로그램이 정답을 제공하는 건 아니지만, 각자의 답을 찾아가는 방법에 있어 자기 맞춤형의, 그렇기에 더 빛나는 힌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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