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웹 예능 전성시대’이다. 숏폼 콘텐츠가 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여러 방송사들이 자사의 이름을 내걸고 웹 예능을 생산해내고 있다. 고전적인 틀과 방송법의 제재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진 웹 예능은 특유의 가볍고 센스 있는 분위기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대세로 통하는 웹 예능의 홍수 속에서 <말년을 건강하게>가 지닌 차별성과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한 생각을 나눠보고자 한다.
‘케미’는 영어로 화학을 뜻하는 ‘케미스트리(chemistry)'의 준말로, 방송사에서는 출연진들 간의 시너지, 즉 함께할 때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의미한다. 로맨스 드라마에서 남녀 주연 배우의 ‘케미’가 시청률을 보장하듯, 예능에서도 고정 출연자들 간의 합 또는 관계성이 매우 중요하다.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의 하락세가 핵심 멤버들의 하차와 변동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시청자들은 설정된 상황 속에서 쥐어짜 낸 웃음보다는, 합이 잘 맞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웃음을 좋아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말년(침착맨)과 주호민(펄)의 ‘침펄’ 조합은 웹 예능 중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숱이 심히 없는 자(주호민)’와 ‘수치심이 없는 자(이말년)’란 별명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은 쌍으로 존재할 때 존재감이 더 부각된다. 두 작가는 웹툰 1세대 작가로서 서로 친하게 지낸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 출연자들이 서로 놀리고 구박을 하더라도 시청자들은 재미를 느낄 뿐, 불쾌해하지 않는다. 등산을 하며 서로에게 불리한 페널티를 부여할 때도, 필라테스를 하며 상대방의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고 도저히 못 봐주겠다고 소리칠 때도 웃음이 빵빵 터진다. ‘침펄’ 조합과 더불어 무심한 듯하면서도 의외의 오기와 승부욕이 넘치는 만화가 기안84도 이 관계성에 웃음을 더한다. “못하겠다”라고 벌렁 드러눕다가도 “옆에 있는 사람보다 잘하는데요?”라는 강사의 간단한 자극에 기안84는 다시 일어나 연습에 매진한다.
출연자들이 이끌어내는 웃음의 바탕에는, 오랫동안 함께 웹툰계를 견인해 온 소중한 동료들 사이에 형성된 상호존중의 태도가 깔려있다. 일부러 특정한 상황을 만들어 출연자에게 서운함을 주고 이후 선물을 주는 깜짝 카메라 형식은 최근 들어서는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출연자를 함부로 대하거나 따돌린 후 “사실 다 장난이었어”라는 마무리로, 기분이 상한 사람이 잘못을 따지기도 민망한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전문 예능인이 아님에도 침과 펄, 그리고 주변의 인물들이 만들어낸 조화로운 관계성은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럽고 편안한 웃음을 선물한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도전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너무 늦지 않았을까?’, ‘남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않을까?’ 등의 걱정이 생기며, 새로운 시도에 스스로 벽을 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의 관찰 예능들은 뛰어난 출연자와 평범한 ‘나’ 사이의 간극을 느끼기 쉽게 만든다. 출연자들이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나만의 홈카페를 꾸미고 부지런히 자기 계발을 하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다들 저렇게 멋지게 사는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할까?’하는 자괴감을 느끼고는 한다. 흠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을 보며 평범한 ‘나’는 계속해서 작아진다.
반면 <말년을 건강하게>에서는 출연자들의 서툰 모습을 얼마든지 보여준다. 불혹에 가까운 출연자들이 격투기, 필라테스, 스포츠 클라이밍 등에 뛰어드는 과정은 당연하게도 매끈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 모습은 젊음이나 특별한 재능이 없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그것에 유쾌한 도전장을 내밀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월드컵 같은 큰 스포츠 대회가 열릴 때마다 ‘언더독(Underdog)’이란 말이 자주 언급된다. 우승후보와 강팀을 응원하기보다는, 모자라고 부족한 약팀을 더욱 응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말년과 주호민은 언더독 중의 언더독으로, 웨이트 트레이닝 3개 종목이 ‘3대 500’이 아닌 ‘3대 180’이 나오고 무엇을 해도 자세가 허술하다. 처음에는 삐거덕거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쑥쑥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승진, 전태풍 선수와 함께한 농구 편에서 주호민은 자유투 시합에서 선수를 꺾기도 하고, 비록 1대 8(출연진)의 시합이었으나 선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최근 미디어에서는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배움이 끝나는 게 아니라, 나이와 무관하게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 꾸준히 배우는 것을 뜻한다. 전편 <말년을 행복하게>에서는 주식을 처음 접하는 이말년과 주호민이 재테크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유튜브 인기 댓글은 “이 조합 평생 보고 싶다. 다음 편은 <말년을 교양 있게>로 삼국지 등 역사 공부를 하고, <말년을 든든하게>로 요리 프로그램도 해보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프로에게도 처음은 있기 마련이다. 불혹에 가까운 어른들의 도전은 ‘나도 늦지 않았다. 한번 해보자’는 마음가짐에 불을 지펴줄지도 모른다. 이 프로그램 덕에,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워 삶에 활력을 더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민머리여서 붙은 숱이 심히 없는 자(주호민)와 지나치게 솔직해서 붙은 수치심이 없는 자(이말년)의 별명을 포함해, 출연자들을 둘러싼 수많은 밈(Meme)들이 있다. 침펄 조합이 유튜브 등의 매체에서 인기가 많은 만큼, 많은 인터넷 밈들이 자막으로 등장했다. 밈은 분명히 콘텐츠에 큰 재미를 더하지만, 동시에 주의할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많은 밈들이 사용되고 그만큼 다양한 자료화면과 자막이 필요하다 보니, 화면 전환이 빠르다. 한 화에 굉장히 많은 자료화면과 자막이 들어가 장면들이 깜빡이듯 지나갈 때도 있다. <말년을 건강하게> 농구 편을 볼 때, 개인적으로 농구에 대한 지식이 조금은 있었음에도 ‘리바운드’ ‘플라핑’과 같은 기술에 대한 설명이 스치듯 지나가서 내용을 돌려봐야 했다. 다양한 밈의 활용은 콘텐츠에 통통 튀는 색깔을 더해주지만, 그만큼 운동 동작과 자세를 설명하는 부분은 짧아져 흐름을 따라가기 다소 어려울 때가 있었다. 필요한 설명이 나오는 장면에도 조금만 더 시간을 할애해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우면 좋을 것 같다.
다음으로, 시의성을 지닌 자막 사용이 필요하다. 이말년의 가장 유명한 별명은 ‘안산 일진’ 또는 ‘일찐맨’이다. 물론 실제로 노는 학생이었던 것은 아니고, 안산 출신에 다소 카리스마 넘치는 과거 사진 덕에 붙은 별명이다. 이말년이 실제로 일진이었던 것도 아니고, 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웹 예능인만큼 ‘일찐맨’ 등의 자막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격투기를 배웠던 5화에서 이말년이 주호민을 바닥에 눕히고 괴롭히는 시늉을 하자 “학교 폭력 신고는 117”이라는 자막이 나왔는데, 이 부분은 다소 부주의하다고 느꼈다. ‘학교폭력’은 친구들끼리 치는 장난에 농담으로 사용될 만한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밈의 사용은 적절하고 어떤 밈의 사용은 부적절한지, 그 명확한 기준을 잡기는 분명히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누구에게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웃음을 위해 가볍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되돌아보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년을 건강하게>를 보고 최근 들어 가장 크게 웃었다. 제작진들이 억지로 상황을 연출하지 않아도, 출연자들의 대화만으로 ‘찐’ 웃음을 이끌어내는 예능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이 프로그램만의 매력을 살리고 주의할 점을 의식해 침과 펄, 둘 사이에 피어나는 무모한 도전이 주제를 막론하여 계속 펼쳐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