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장에서

일년 전 서랍에서...

by 네네

다음 주면 추석이다. 세차할 때가 되었군.

나는 세차를 일 년에 딱 두 번 한다. 설에 한 번, 추석에 한 번. 오늘이 바로 일 년에 두 번만 있다는 그날인 것이다.

딸아이 학원에 내려주고 카페에서 기다리는 동안 세차 하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은데...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늘 그랬듯 60대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세차장으로 향한다. 차를 맡기고 1,2시간이면 세차가 되어있는, 손님이 많지 않은 그곳.


오늘은 오후 늦게 왔더니 차가 평소답지 않게 많은데... 일단 물어보자.

세차장 바깥 공간에 주차를 하고 세차에 여념이 없는 사장님께 다가가 큰 소리로 묻는다.

"사장님!!! 오늘 세차되나요?"

고개를 돌려 대답하는 사장님의 눈은 내가 아닌 저 멀리서 오는 커다란 suv 차량에 고정되어 있었다.

"음.... 그게.. 말이에요... 오늘은 안 되겠는데..."

"아.. 그렇죠... 혹시 예약된 차가 있으신 거예요?"

"그건 아닌데... 안될 것 같네요."

"명절 전이라 더 바쁘신가 봐요. 그럼 다음에 올게요."

딸아이를 먼저 학원에 내려주어야 한다. 서둘러 차에 타 학원으로 방향을 돌린다.

그런데 저만큼 가다 보니 아까 그 suv차량이 사장님의 손짓에 맞게 세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여러 가지 의문과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뭐지? 예약된 차가 없다고 했는데... 내가 먼저 들어갔는데 왜 저 차는?'

그 의문은 점차 화로 바뀐다.

'뭐지 정말? 혹시.. 내 차가 소형차라 그런 건가? 너무 지저분해 보여서 그런 건가?'

'저 차는 큰 suv차량에 관리도 잘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저 차가 더 돈이 될 거라 생각하시는 건가?'

학원에 들렀다, 카페로 갈까 하다가.. 계속 마음에 걸릴 것 같았다.

항상 그랬다. 에이, 나만 참으면 되지, 뭐...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 억울한 일만 쌓여갔다.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늘 생각에서 끝이 났다.

오늘이야말로 내 벽을 깨는 날이야. 오늘은 해 보이겠어.

세차장에 돌아가보니 사장님은 여전히 거센 물줄기를 차에 뿌리고 있었다.

"저기요, 사장님.."

아, 안 들리시나 보다.

"사장님!!"

그냥 갈까? 어차피 세차하기엔 시간도 애매한데... 아냐, 오늘부터 거듭나기로 했잖아.

"사장니임~~!!!! 사장님!!!!"

그제야 사장님은 호스의 물을 끄고 고개를 돌리신다.

"사장님, 저기 있잖아요.. 아까 저한테 예약 손님 없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왜 저 차 먼저 세차해 주시는 거예요? 제가 더 먼저 왔는데요..."

사장님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보시더니.. 이내

"손님, 제가 순서를 바꾸어서 세차는 안 하지요. 저 차는 손님 오시기 전에 왔던 차인데 아까는 차가 많아서 한 바퀴 돌고 오신다더니, 이제 오신 거예요. 제가 그렇게는 안 하지요."

너무나도 단호한 사장님의 말씀에

"그러니까요. 그래서 어떤 사정인지 여쭤봐야 저도 괜히 오해를 안 할 것 같아서 다시 여쭤보러 온 거예요."

하고 당당한 척 돌아섰지만 왠지 모를 창피함에 숨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오해가 풀렸음에도

왜인지 화가 사그라들지를 않았다.


바보같이.. 그런 걸 뭣하러 얘기해선...

깊숙이 숨겨두었던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확인한 것 같아 뜨끔했다.

정말 벗어나야 했던 내 틀은 참는 습관이 아니라, 열등감 때문에 생겨난 타인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아니었나 싶다.

타인에 대한 너그러운 시선은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나, 아직까지 어린 나는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너그럽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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