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잘 버텼어
'일상의 글쓰기' 글감 - [한해를 보내며]
금요일 저녁 아홉 시 30분, 노트북을 연다. 저녁 식사하고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이제 기운이 좀 난다. 이번 주는 업무가 휘몰아쳤다. 지난주에 3일간 워크샵 참석으로 학교를 비운 데다가 인사 철이라 일이 밀렸다. 그야말로 화장실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보내고 맞이하는 휴식이라니. 달콤하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컴퓨터 작업하고 야근까지 할 수 있을 만큼 몸이 좋아졌구나!
올해는 이제 나도 나이 들었고,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마냥 젊을 줄 알고 까불다 크게 한 방 맞고 겸손해지는 중이다. 작년 겨울부터 언니들이 말하는 갱년기 증상이 조금씩 나타나더니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자 산부인과에서 물혹 제거 수술을 받았다. 연이어 고지혈증 약까지 먹게 되었다. 4월에는 한창 재미에 빠져 주 4~5회씩 다니던 배구 동호회에서 수다 떨다가 날아온 공에 왼쪽 눈을 정통으로 맞았다. 망막에 열공이 생겨 레이저 시술을 받았지만 찢어진 망막에서 나온 유리체들이 눈앞에 떠다닌다. 어두운 곳에서는 번쩍거리는 섬광증도 나타난다. 평생 달고 살거나 심하면 망막 박리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 6개월마다 검진을 받아야 한다.
5월, 이번에는 목 디스크가 터졌다. 목, 어깨뿐만 아니라 팔과 손가락까지 저려서 도수 치료를 받으러 다녔는데, 어느 날 치료사가 좀 심하게 비튼다 싶었다. 다음 날부터 앉아 있을 수도 없게 통증이 심하고, 어지럽고, 매스꺼웠다. 수소문해서 광주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엠알아이(MRI)만 보면 당장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찢어진 디스크 속에 있는 수핵이 흘러나와 주변 신경에 묻어 염증이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신경 차단술을 1주일에 한 번씩 세 차례 받고, 일단 약물 치료부터 하기로 했다.
온갖 검은 먼지가 떠다니고 시야는 흐린 데다, 컴퓨터 앞에 5분만 앉아 있어도 어지럽고 식은땀이 났다. 남편은 병가를 내든지 병 휴직을 하라고 했지만 학교에 민폐가 될 것 같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참아 보려고 어떻게든 꾸역꾸역 나갔다. 책상 옆에 의자를 길게 붙여 놓고, 일하다가 누웠다가를 반복하며 두 달여를 견뎠다. 그렇게 근무한다고 누가 모범 공무원이라고 상을 내릴 것도 아닌데 참 미련하기도 했다.
6월 말부터는 5주 간의 연수가 있었다. 끝까지 마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낫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의자가 높아서 머리를 기대고 목에 수건을 돌돌 말아 넣고서 곧은 자세로 강의를 들었다. 훨씬 무리가 가지 않았다. 바로 여름 방학이 이어진 것도 회복에 좋은 기회가 되었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운동이나 모임을 하지 못하고 퇴근하면 바로 누워 지내야 했다. 디스크 탈출만 된 것이 아니어서 섣불리 근육을 강화시킨다고 운동하면 안 되고 걷기만 하라고 했다. 살이 찌고 무기력해졌다. 우울했다. 걷기도 싫었다.
남편이 2학기에도 평생교육원에 서예 강좌를 신청한다고 했다. 나도 좀 할 게 있나 찾아 보다 글쓰기를 발견했다. 온라인(on-line) 강의라 마음이 갔다. 첫 번째 수업 시간만 해도 앉아 있기가 힘들어서 좀 듣다 비디오는 끄고 누워서 들었다.
첫 글감을 받고는 며칠 동안 한 글자도 쓸 수 없어서 당황했다. 빨간색 투성이의 성적표도 충격이었다. 그동안 우리 글을 너무 모르고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친다고 했는데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교직에 있는 터라 더 부끄러웠다. 좀 지나니 문우들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문장, 깊이 있는 생각이 많았다. 다르다. 내 것은 구구절절 설명하기 바쁘고 울림이 없어서 밋밋하다. 문장의 호응, 문법, 띄어쓰기는 계속 수업 들으면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쓰는 감각은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따져 보았다. 지금부터 적어도 한 십 년은 많이 읽고, 꾸준히 써야 괜찮은 글이 좀 나올 것 같은데. 내겐 너무 긴 시간이다.
남편에게 징징댔더니 한마디로 정리해 준다. 초보자가 욕심이 너무 많다고. 잘 쓰려는 마음을 버리고 그저 쓰레기(함께 들은 강연에서 편성준 작가가 한 표현)를 쓰라고. 자기도 퇴직 후까지 서예를 할 테니, 같이 하잔다. 그 말이 듣고 싶었나 보다. 마음 놓이는 격려의 말.
아직도 베개를 여러 개 쌓고 목베개까지 받치고 난 후에야 숙제한다. 두 쪽짜리지만 집중할 곳이 있어서 2학기를 잘 지나올 수 있었다. 처음으로 겪었던 건강 이상 증세는 시간, 그리고 글쓰기와 함께 치유되고 있다. 글쓰기 카페가 없었다면 우울에서 벗어나는 데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오늘은 누가 글을 올렸을까 궁금해하며 카페에 들락날락거리는 것도 즐거웠다. 교수님이 내 글이 재미없다고 해도 굴하지 않고 버텨 보리라. ‘교수님은 처음부터 잘 썼나요?’라고 따져 가면서. 실력을 인정하면 편해질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냥 즐기자.
2023년. 갱년기와 우울증, 망막 열공과 목 디스크를 겪어 내면서 글쓰기의 즐거움과 3kg의 살을 얻었다. 두 가지나! 역시 욕심이 많았다. 하나는 버리자!